경제계가 174석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에 떨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친노동 법안까지 강행 처리 수순에 들어가자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여당의 졸속 입법으로 규제에 ‘대못’이 박히면 임대차 3법처럼 경제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일 민주당 단독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상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무위원회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안건조정위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처리에 나섰다. 기업규제 3법과 공수처법 개정안은 전날 국민의힘 신청으로 각 상임위원회에서 쟁점 법안을 다루는 안건조정위에 회부됐다. 활동기간은 최대 90일이지만 민주당은 이날 단 하루 만에 각 안건조정위 활동을 종료시키기도 했다. 민주당은 9일 열리는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기업규제 3법과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친노동법안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환노위는 이르면 9일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조합법·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처리할 방침이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활동을 허용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 경제계가 반대하는 법안들이다.
경제계는 비상이 걸렸다. 주요 기업은 내부비상회의를 소집해 기업규제 3법과 친노동법 등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당분간 경영권을 지키고 노조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할 판”이라며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건 보류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회 상황을 보면서 경제법안을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데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며 “기업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박 회장은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기업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 의결한 사람들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경제단체도 성명을 내고 민주당의 기업규제 3법 처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안건조정위 최장 90일인데, 공수처법 논의도 90분 만에 끝내
민주당은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상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무시했다. 당초 이날 전체회의는 낙태죄 공청회가 예정됐지만,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공청회에 앞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자 윤 위원장은 “지금 토론할 상황이 아니다”며 토론마저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민주당은 개정안 의결에 앞서 ‘비용추계서 생략’ 의결도 건너뛰었다. 윤 위원장은 개정안이 통과된 뒤에야 뒤늦게 “공수처법 의결에 앞서서 비용 추계를 생략하는 의결을 해야 했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하셔서 못했다”며 비용추계서 생략을 의결했다. 나머지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윤 위원장의 진행에 맞춰 기립으로 찬성을 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앞으로 법사위는 윤 위원장과 민주당끼리만 하라”며 “이게 민주주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 마련한 상법 개정안에는 경제계에서 반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그대로 유지했고, 여기에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3%까지 인정하는 안을 채택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임원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도 정부안 그대로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안에서 상장사 기준 지분 0.01%였던 다중대표소송 원고 자격 기준을 0.5%로 강화했다. 비상장사의 경우 1% 지분을 보유해야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하다.
민주당은 정무위원회에서도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법사위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를 시도했다. 내부거래 규제대상 확대 등 정부안이 대부분 반영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만 무산됐다. 민주당 내부에서 전속고발권 폐지가 결국 검찰의 힘을 키워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막판 유지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도원/도병욱/고은이/조미현/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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