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애플과 대등한 게임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천하의 애플도 삼성전자의 D램을 최소한 30%는 써야 한다. 복수의 조달체계를 갖춰야 리스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유력 경쟁자인 삼성을 회피하려면 또 다른 D램 업체를 잡아야 하고, 그에 따른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가 누린다. 1등의 프리미엄은 이렇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데 있다.
‘삼성전자급’은 아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의 제조업체는 1500개(통계청 기업생멸통계) 정도다. 현재 활동 중인 625만 개 국내 기업 중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제조업체 수다. 이들이 대외의존도 70%가 넘는,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우리 경제의 태생적인 취약 구조를 방어하는 방어막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더 큰 우려는 ‘경제의 정치화’다. 제조업의 고군분투를 당연하게 여기며, 정부가 베푼 시혜의 결과쯤으로 돌리려는 정치권의 아전인수가 기업을 사지로 몰고 있다. 각종 규제 입법으로 기업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업 활동의 근간이 되는 상법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와 표 계산에 휘둘려 유례없는 개악(改惡)이 이뤄졌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정치가 그 어떤 경쟁자보다 가장 큰 위협”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자신의 SNS에서 “제조업을 한국 경제의 보석으로 불러 마땅하다”며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극찬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립서비스에 그칠 게 아니라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선거 때마다 기업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겠다고 한 약속만 지켜달라.” 올 한 해 코로나19와 사투하며 힘겹게 버틴 기업인들의 마지막 호소다.
sgle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