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포럼] 디지털금융, 한은법이 나침반이다

입력 2020-12-09 17:53   수정 2020-12-10 00:09

지금 세계적으로 디지털금융 시장이 엄청나게 뜨겁다. 유수의 전자상거래(아마존, 알리바바, 네이버)나 SNS(위챗, 페이스북)업체까지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경과 산업을 넘나드는 경쟁에서 한국이 밀리면 곤란하다.

그렇게 하려면,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 바로 내국환(內國換)이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환을 잘 안다. 외국환은 외국 돈, 외화예금, 해외 유가증권, 금 등을 말한다. 내국환은 그와 다르다. 은행법에서 다루는 내국환은 송금과 어음 추심 등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며, 디지털금융은 거기서 새끼 친 파생 서비스다.

잘 알다시피 외국환 업무는 외국환관리법의 규제를 받는다. 내국환은 관련 법률이 훨씬 많다. 한국은행법과 은행법, 그리고 어음·수표법이다. 내국환의 원천이 한은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이고, 어음·수표의 추심이 그 중간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지털금융이 발전하려면 내국환 업무의 뿌리인 한은법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한은법에는 내국환이라는 말조차 없다(현행 법률에 ‘지급결제업무’라는 말이 있지만, 내용을 보면 내국환과 상관없다). 그러면서 디지털금융의 혁신을 외치는 것은, 책이 뭔지도 모르면서 도서관을 세우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 금융위원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은법이 아니라 전자금융거래법을 손보려고 한다. 전자금융거래에서 ‘결제’가 중요하니까 금융‘결제’원이라는 기관을 감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금융결제원은 결제하지 않는다. 통신만 한다. 이 기관의 영문명칭도 통신사(Telecommunication Company)다. 이름만 듣고 금융결제원을 금융위가 감독하는 것은 붕어빵 장사를 해양수산부가 감독하는 것과 같다.

감독의 논리가 궁색한 금융위는 전문용어를 꺼내든다. 증권거래의 ‘청산’을 담당하는 한국거래소를 금융위가 감독하듯이 내국환의 ‘청산’을 담당하는 금융결제원도 금융위가 감독하는 것이 일관성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속임수에 가깝다.

증권거래의 청산에 문제가 생기면, 그 거래를 체결시킨 한국거래소가 책임을 진다. 반면 내국환의 청산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결제원이 책임지지 않는다. 어음과 수표가 부도나면 그 사실을 해당 은행에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금융결제원은 통신사다). 이처럼 증권거래와 내국환 업무는 근본원리가 다르다. 그러니까 ‘청산’이라는 말을 꺼내 금융결제원 감독을 유도하는 것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속임수다.

금융결제원의 기능이 중앙은행의 업무 수행에는 절대적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금융결제원 기능을 중앙은행(Fed)이 직접 수행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은 본부가 금융결제원과 수시로 통신하며 하루평균 70조원의 지급준비금을 조절한다. 한은 본지점 간 자금 이체 규모와 통신량보다도 훨씬 많다. 금융결제원은 사실상 한은의 분신이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을 감독하려고 한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증권감독위원회(SEC)가 Fed를 감독하겠다는 말과 같다. 이런 황당한 시도를 차단하고 내국환 영역의 분수령을 정확히 세우는 것이야말로 디지털금융 혁신의 시작이다.

그래서 한은법 개정이 시급하다. 현행 한은법 제84조(환거래계약)에는 금융결제원과의 관계가 아주 희미하게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은행법을 그대로 베낀 것인데, 그 내용이 하도 부실해 일본은 1998년 해당 조문을 전면 수정했다.

지금 국회와 기획재정부가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은법에 내국환 업무를 정확히 담는 것은 국민의 금융 편의 증진과 디지털금융 발전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일제 잔재를 걷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은 화폐박물관 건물에 남은 이토 히로부미의 흔적(정초석)만큼이나 한은법에 박혀 있는 일제 잔재의 청산에도 문제의식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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