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스파이의 대명사는 네덜란드 출신의 마타 하리다. 1차 세계대전 때 파리 물랭루주의 댄서로 인기를 모은 그녀는 프랑스 군부와 정계 고위층의 ‘연인’이 되어 수많은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 나중엔 이중간첩으로 활동하다 1917년 프랑스에서 총살당했다.
영화 ‘색, 계’의 실제 주인공인 중국의 정핑루(鄭平如)도 그랬다. 1930년대 상하이 사교계의 꽃으로 불린 그녀는 국민당에 포섭돼 주요 친일인사의 암살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상대방과 ‘금단의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작전에 실패하고 총살을 당했다.
일본에는 ‘동양의 마타 하리’로 불린 가와시마 요시코가 있다. 청나라 왕족 출신인 그는 일본 간첩으로 만주국 수립을 도왔지만, 1948년 중화민국에 의해 처형됐다. 미인계에 걸려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 상하이 주재 일본 외교관은 술집 접대부로 위장한 미녀 스파이에게 빠졌다가 목을 매고 말았다.
러시아의 미인계 역시 만만치 않다. 2018년 미국에 유학 중인 20대 여성 마리아 부티나가 미 공화당 고위 인사와 동거하며 정보를 빼내다 체포됐다. ‘21세기 마타 하리’로 불린 그녀의 수법은 2010년 안나 채프먼 사건과 똑같았다.
스파이를 추적하던 정보요원이 역이용당한 사건도 있었다. 2003년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제임스 스미스는 자신이 ‘관리’하던 중국 여성 스파이와 정사를 갖고 기밀정보를 흘리다 체포됐다.
요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암약하는 산업 스파이까지 미인계를 쓰고 있다. 며칠 전 미국은 첨단기술을 빼돌리려는 중국 스파이 혐의자 1000여 명을 한꺼번에 추방했다. 그 와중에 미 정계 인물과 성관계를 맺고 기밀을 빼낸 중국의 ‘유학생 마타 하리’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미인계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중국 고전병법 ‘삼십육계’의 주요 계책답게 상대의 마음을 송두리째 훔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달콤한 꿀의 유혹은 그치질 않는다. 그 함정에 몸을 던지는 불나방의 춤 또한 계속된다. 마타 하리처럼 스스로 덫에 걸려 죽는 줄도 모르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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