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대철학의 거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평생 한 음악가에 홀려 있었다. 경배보다 집착에 가까웠다. 30여 년간 비평집을 내려고 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작품에 담긴 철학을 끝내 풀어내지 못했다. 수수께끼를 남긴 예술가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악성(樂聖)으로 남은 불멸의 작곡가다.
예술가들도 시대를 막론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했다. 19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영웅은 사상이나 힘의 승자가 아니라 순수하고도 강인한 인물이다. 그 정점에 베토벤이 있다”고 했다. 대표작 《장 크리스토프》는 베토벤 생애를 본떴다.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악마적 매력’을 《크로이처 소나타》로 풀어냈다.
그의 사후 200년, 베토벤은 더 맹렬하게 소비된다.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가 베토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분위기가 고조될 때 그의 ‘교향곡 7번 2악장’이 흘러나온다. 이런 영화가 1200여 개다. 연말이 되면 캐럴과 함께 ‘교향곡 9번’이 울려 퍼진다. 숭배자들은 나이도 선악도 초월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혐오스런 악당 알렉스는 베토벤을 광적으로 사랑했다. 2018년 104세의 나이로 존엄사를 택한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눈을 감기 전 “베토벤을 들려달라”고 했다.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답은 그가 남긴 음악에 있다. 선율의 시작은 불안과 고통을 품는다. 후반부는 자유와 환희, 카타르시스의 폭발이다. 그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글처럼 ‘고통을 통한 환희’를 선물하는 것이다.
12월 17일. 베토벤이 태어난 지 꼭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세계가 그를 찾았다. 베토벤을 주제로 한 공연이 1년 내내 열렸고, 연주자들은 앞다퉈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완주에 도전했다. 음반·서적도 쏟아졌다.
시대가 베토벤을 소환한 것일까. 시기가 묘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불안의 시대, 사람들은 위로가 아니라 초월을 기대하는 듯하다. 1814년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두 남동생에게 유서를 남겼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절망에 빠져 자살하고 싶었다”고 썼다. 하지만 고통을 초월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직 예술, 그것만이 나를 붙들었다.” 베토벤은 살아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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