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배달 주문이 늘어난 요즘. 한 커피집에도 배달 전화가 쏟아진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봉석은 오토바이를 몰고 급히 커피와 빵을 배달한다. 서로를 경계하고 마주치기조차 싫어 주문한 커피를 문 앞에 두고가라는 사람들의 차가운 한마디에 지쳐갈 때쯤 봉석에게 다음 커피 배달 호출이 들어온다. 배달할 커피를 찾으러 급히 카페에 들어온 봉석은 배달할 커피를 보자 흠칫 놀란다. 배달용 잔이 아니라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커피집 직원 지영은 남자에게 “이건 제가 주문했어요. 커피 한 잔 드시고 하세요”라며 커피를 건넨다.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봉석은 잠시 머뭇거린다. 벽에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 필수. 사회적 거리두기 2m’라고 붙어있는 포스터 때문이다. 결국 지영은 커피집 안에서, 봉석은 밖에 앉아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함께 커피를 마신다. 살짝 미소지으며 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깝게.”
문성민 감독이 ‘제5회 커피 29초영화제’에 출품한 ‘마음의 거리 5cm’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1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아트리움광장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배달 문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쾌하게 엮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행하면서도 커피 한 잔으로 온정을 나누는 둘의 마음의 거리는 커피 잔만큼이나 가깝다는 메시지를 재치있게 담았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고 ‘청춘, 커피페스티벌’이 후원한 이 영화제는 국내 최대 커피문화축제인 ‘2019 청춘, 커피페스티벌’과 함께 열려 출품 경쟁이 더 뜨거웠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위드 커피(with coffee), 커피와 함께하는 모든 이야기’였다. 직장인과 학생들의 지친 일상을 깨우고 또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며 서로를 위로하는 매개로서 커피 한 잔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무엇보다 제1회 커피 29초영화제가 열린 2016년엔 출품작이 200편 정도였는데, 올해는 일반부 660편, 청소년부 74편 등 736편이 출품돼 역대 커피 29초영화제 가운데 최다 출품 기록을 세웠다. 이 중 14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청소년부 대상은 박은결 감독(강원애니고)의 ‘반복되는 일상, 쉬엄쉬엄’이 차지했다. 두 남학생이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모습으로 학교에 도착해 공부하고, 졸리면 운동하고, 다시 공부한 뒤 늦은 시간 집에 와 그대로 잠이 든다. 어제도 그제도 이들의 삶은 마찬가지로 똑같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이들이 겪는 하루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반복적인 일상에 갑갑해하던 두 남학생 중 한 명이 참다참다 결국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아! 쉬엄쉬엄 좀 살고 싶다!” 두 학생은 공부 대신 간만에 야경을 벗삼아 커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화면엔 ‘시험시험, 쉬엄쉬엄. 공부도 휴식과 함께’라는 문구가 나온다.
일반부 최우수상은 ‘아아!’를 만든 유권하 감독에게 돌아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는 여자 직원들이 회사 직원 이야기를 꺼낸다. 두 여자는 영업팀 신입 직원을 평가하며 ‘뉴페’(새로운 얼굴), ‘존잘러’(잘생긴 사람), ‘갈비’(갈수록 비호감) 같은 줄임말을 남발한다. 이 얘기를 듣던 남자 부장이 “세종대왕이 노하시겠다”며 “앞으로 단어 줄여서 말하면 꿀밤 한 대”라며 엄포를 놓는다.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부장님 커피 뭐 드실래요?”라고 묻자 부장은 아무렇지 않게 “난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말한다. 부장은 자신 역시 줄임말을 쓴 걸 알아챘고, 여자 직원들은 꿀밤 때릴 준비를 한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아라는 신조어로 불리며 세대차이를 줄여준다는 발상을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로 유쾌하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은 ‘아빠의 사랑 한 잔’을 제작한 강원애니고의 고나영 감독이 받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평소 친구들과 카페 가는 걸 좋아하던 한 여학생이 밖에 나가지 못한 채 집에 앉아 먼 산만 바라본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아빠가 딸을 위해 조용히 커피 원두를 갈아 카페라테를 만들어 딸에게 건넨다. 그러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되뇐다. 코로나블루(코로나19 확산으로 생긴 우울감)를 겪는 딸을 위해 만든 아빠의 커피 한 잔이 작은 위로이자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해 잔잔한 감동을 전달했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유튜브 ‘청춘커피페스티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시상을 맡은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 박성완 편집국 부국장 등이 참석해 온라인으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 14명을 비롯해 수상자 가족 200여 명이 시상식 현장 방송에 접속해 함께했다. 수상자들에게는 2000만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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