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의 '문화 대통령'

입력 2020-12-10 17:57   수정 2020-12-11 00:13

1960~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출발해 ‘시대의 상징’이 됐던 통기타 음악가들은 대부분 팝송이나 번안곡을 불렀다. 송창식은 ‘케세라’를 읊으며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나길 갈망했고, 조영남은 ‘마이 마이 마이 딜라일라’로 목청껏 사랑을 노래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에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덧입힌 김세환은 수많은 청춘의 눈길을 밤하늘로 돌렸다.

가난했던 시절, 외국 것이라면 무조건 멋있어 보였다. 심수봉은 러시아 민요에서 ‘백만 송이 장미’를 꽃피웠고, 현인은 멕시코 노래에서 ‘베사메 무초’를 따왔다. 트로트는 일본 엔카(演歌)의 아류로 폄훼되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런 여건에서 한국인이 ‘문화 종주국’이 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TV 제작자들은 틈만 나면 부산으로 내려가 바다를 건너오는 일본방송 프로그램을 베꼈다. 자긍심이 약한 것은 당연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 한국 시장이 초토화될 것이라며 몸을 움츠렸다. 극장에 뱀을 풀면서까지 할리우드 직배(直配)에 반대했던 영화인들의 열등감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이처럼 변변찮던 ‘메이드 인 코리아’ 대중문화가 언제부턴가 글로벌 시장의 주역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은 팝의 본고장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복면가왕’ 같은 한국 오락 프로그램들이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에 수출돼 리메이크됐고, 한국 웹툰은 만화왕국 일본을 파고들었다.

마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 같은 대변혁이 아닐 수 없다.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PD에게 눈길이 쏠린다. 청년시절 접한 MTV를 통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읽은 그는 25년 전 SM을 차린 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 한국형 아이돌을 잇따라 선보였다. 체계적으로 해외 시장도 개척했다. 최근에는 아바타와 실제 가수를 혼합한 그룹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이 총괄PD가 국내 최고 권위의 한경 다산경영상을 수상했다. 문화산업이 융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문화 시장’을 창조해낸 그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상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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