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기업이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사상 최고 이익과 매출을 기록하는 유통기업들이 있다. 홈센터(생활용품·인테리어 전문 대형마트)인 DCM홀딩스, 약국 체인 쓰루하홀딩스, 가구 전문점 니토리홀딩스 등이다. 20여 년 전 홋카이도에서 살아남은 바로 그 기업들이다. 스즈키 대표의 예언대로 홋카이도 강자였던 이들은 20년 새 전국구 기업이 됐다. 니토리와 쓰루하는 일본 최대 가구 전문점과 약국 체인이 됐다. 숱한 인수합병(M&A)을 통해 DCM으로 이름을 바꾼 호마크는 일본 2위 홈센터로 성장했다.
1998년 매출 348억엔(약 3634억원), 영업이익 20억엔이었던 니토리는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7026억엔과 1329억엔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은 20배, 영업익은 67배 늘었다. 쓰루하의 매출은 495억엔에서 8600억엔, 영업이익은 21억엔에서 452억엔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홋카이도 기업들이 일본을 제패하는 상황에 어느새 ‘신(新)홋카이도 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홋카이도 기업들은 왜 강한가. 경제 전문 평론가 아리모리 다카시는 “지옥에서 생존한 기업들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본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는 유통업계의 불모지다. 남한만 한 면적(8만3450㎢)에 인구는 부산과 대전을 합친 것보다 조금 많은 528만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195만 명은 삿포로에 몰려 있다. 연평균 소득은 447만엔으로 도쿄(620만엔)의 3분의 2 수준이다. 구매력은 떨어지는데 물류비용은 갑절로 드는 홋카이도에서는 지금도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추가 배송비를 물거나 배송기간이 길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경제와 인구의 과도한 삿포로 집중과 지방 소멸, 기업 수 감소와 소득 하락 등 일본 지방의 고질병을 모두 앓고 있어 ‘일본의 종합병동’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홋카이도의 기업은 창업과 동시에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초고효율 경영을 실현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척박한 경영환경 때문에 외주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아 고도의 상품 공급 조직을 자력으로 구축해야 한다. 홋카이도에서 살아남은 유통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지체없이 공급하는 조직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DCM은 1980년대 컴퓨터로 매장에서 팔린 양만큼의 상품을 자동으로 보충하는 재고관리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니토리는 ‘기획-제조-물류-판매’를 모두 자체 소화하는 일관공정을 완성했다.
만성 불황 상태인 홋카이도의 소비자들은 가격과 서비스에 특히 까다롭고, 불황이 심할수록 이미 검증받은 1등 기업에만 몰린다. ‘승자독식’이 홋카이도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다.
홋카이도척식은행 파산도 니토리와 DCM, 쓰루하같이 지역 1등 기업에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사들을 제거해주는 기회였다. 코로나 위기는 파급 범위가 세계로 넓어진 척식은행 파산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다. 가격경쟁력과 물류 효율성을 가진 기업만 살아남는 코로나 시대의 경쟁원리는 홋카이도 기업이 20여 년간 갈고닦은 주특기다. 다른 지역의 기업에 지려야 질 수가 없다는 게 일본 유통업계의 공감대다. 영국, 미국 등에서 코로나 백신 개발과 접종이라는 낭보가 들려오지만 기업 경영환경이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긴 어렵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홋카이도 기업들의 스토리를 한국 기업이 참고했으면 한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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