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는 식물과 같은 생산자, 동물이 주축인 소비자, 그리고 곰팡이나 미생물과 같은 분해자, 이렇게 세 그룹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생성되고 소비하고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생산을 맡은 기업이 있고 또 소비를 맡은 가계가 있다. 당연히 분해자도 필요하다. 현대 인류 문명에서 곰팡이와 미생물의 역할은 아무래도 쓰레기 처리 시설에 돌아갈 것 같다. 쓰레기 소각장은 현대 산 업사회가 창조한 거대한 미생물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쓰레기 소각장은 님비(NIMBY: 주민 기피시설) 시설이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심하다. 쓰레기를 태울 땐 중금속, 미세먼지, 환경 호르몬 등도 많이 발생한다. 그중 특히 문제가 됐던 게 유독성 발암 물질로 유명세를 치른 다이옥신이다. 청산가리 독성의 1만 배에 달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며 한때 무척 시끄러웠다.
오늘날 다이옥신이 가진 악명은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한 고엽제에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돼 있었던 데에서 비롯한다. 고엽제는 밀림 제거를 목적으로 한 제초제였기에 인체에 해로운 다이옥신을 쓸 이유가 없었다. 다만 고엽제의 제조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불순물의 하나로 생성됐다고 한다.
다이옥신은 이름 때문에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적인 화합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래전 태초부터 자연계에 존재해 온 물질이다. 앞서 말했듯 당장 산불 때문에라도 다이옥신은 발생한다. 그래서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식물은 다이옥신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갖게끔 진화돼 있다. 다이옥신이 누리는 대단한 악명에 비해 실제 그로 인한 사망자는 수십 년간 단 한 명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실제로 과거의 쓰레기 소각장은 ‘다이옥신 배출장’이란 오명으로 불렸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엔 소각로 정화 기술이 발달해 소각장 부근의 다이옥신 농도나 보통의 자연환경에서의 다이옥신 농도나 별 차이가 없다. 이미 말했지만 뭔가를 태우면 다이옥신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만큼 다이옥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것과 다름없다. 말하자면 일종의 기회 이익인 셈이다. 실제로 요즘 쓰레기 처리 업계에선 이제 쓰레기 소각장은 다이옥신 소각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요즘 건설되는 쓰레기 소각장은 깨끗하게 쓰레기를 태우는 일은 물론 비록 적지만 전기까지 생산한다. 쓰레기를 소각한 열과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소각장 인근의 지역 가구에 싸게 공급한다. 쓰레기 중 일부가 전기로 다시 이용되는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쓰레기가 느는 걸 피하긴 어렵다. 쓰레기는 현대인들이 누리는 높은 삶의 질에서 나오는 당연한 파생물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1인당 배출하는 쓰레기도 함께 늘어난다. 그런데 몇몇 환경 운동가는 그런 현대인들을 향해 죄책감을 가지길 강요한다. 편한 삶을 누리는 대가로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고도의 문명과 편리한 삶을 포기하는 게 옳은 일일까? 과거의 불편한 삶으로 돌아가는 데 동의할 현대인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보단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면서 동시에 쓰레기 처리 기술이나 쓰레기 재활용 기술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게 현명한 길이 아닐까? 오늘날 다이옥신 발생을 억제하는 최신의 쓰레기 처리 기술은 환경주의자들이 제안하는 금욕적 방법이 아닌, 과학 기술을 믿고 거기에 투자해 온 과학자와 기업가들의 진취적 해결책에서 나왔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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