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출범 첫 해 개최하겠다고 밝힌 회의체로 ‘반중(反中) 연합전선’이 될 전망이다. 한국이 처음으로 미국이 구상하는 반중전선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가운데 정부가 중국의 반발에 앞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 장관은 11일 미국 아스펜연구소 안보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우리는 빌 클린턴 행정부가 1999년에 시작한 국제포럼인 ‘민주주의 공동체회의’의 멤버로 지속해서 활동하고 있다”며 “이 공동체회의의 부흥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기간에 선언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공동체회의’는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보호·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출범한 정부 간 연합회의다. 한국은 미국 등 29개국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회의가 2년에 한번씩 정상급이 아닌 장관급으로 개최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결속력이나 인지도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3월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스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당선되면) 첫해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이라며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에서 퇴보하는 국가들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은 이 회의체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해왔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선제적인 대응이 중국의 반발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미 행정부가 아직 출범하지 않고 이 회의체의 성격에 대해 명확하게 ‘반중’이라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이 낫다는 분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이든 당선인의 공약이고 반중전선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데 구상이 구체화되기 전에 참여의사를 밝는 것으로 보인다”며 “회의체의 성격이 명확해지기 전부터 참여하면 중국이 이것에 대해 나중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전선 참여를 극도로 꺼려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일본·인도·호주 간 반중 연합 전선인 ‘쿼드(Quad)’를 지역 안보 체제로 공식화하고 ‘쿼드 플러스’로 이를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을 때도 한국은 끝내 공식적인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날 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힌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사실상 쿼드 플러스가 이름을 바꾼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강 장관은 바이든 당선인 측 인사들과 접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스펜 안보포럼을 계기로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겠다고 한 현안들에 대해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강 장관은 이날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한·미 관계 전망에 대해 “새 행정부에서 매우 고무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와도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협력을 했지만 대통령과 측근들의 ‘독특함’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은 서로 매우 다른 입장에서 시작해 아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위비는 새 행정부와 가장 먼저 협의해야 할 현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부가 다음달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바이든 당선인과 외교적인 보폭을 맞추려는 의지를 드러낸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전체적으로 외교적 스탠스를 바이든 행정부에 맞추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실기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의 교훈”이라고 분석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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