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청소년' 8000명 자립 도와…"삼성이 벼랑 끝서 손 내밀었죠"

입력 2020-12-13 17:52   수정 2020-12-14 00:37

<i>한국경제신문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희망 2021 나눔 캠페인’을 맞아 공동 기획기사 ‘희망을 잇는 기업들’을 5회에 걸쳐 싣습니다. 기업들의 나눔 실천으로 새 희망의 끈을 잡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캠페인으로 모인 기금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지원하는 데 쓰입니다.</i>


할머니의 건강악화 소식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할머니는 유일한 보호자였다. 절망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대구에 사는 전모씨(23·여)는 19세 때 그렇게 ‘나홀로’ 살게 됐다. 전씨가 아홉 살 때 별거하면서 집을 나간 부모는 연락도 닿지 않았다.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어요. 돌아갈 집이 없어서 펑펑 울다가, 나쁜 마음을 먹고 건물 옥상만 보며 걸었어요. 그러다 주먹을 꽉 쥐었어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 가정환경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건 억울하더라고요.”

4년이 지난 요즘 전씨의 일상은 다르다. “살맛이 난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지낸다. 전씨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잡게 된 동아줄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2016년부터 참여한 ‘삼성 희망디딤돌’을 동아줄에 비유했다.
막막한 자립, 준비 돕는다
삼성 희망디딤돌은 삼성전자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한 보호 아동·청소년 자립통합지원사업이다. 만 18세 이상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호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해마다 보호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하는 청소년은 2600여 명.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만 18세는 사회적·경제적 독립을 이루기엔 어린 나이여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자립을 충분히 준비하도록 돕는 게 사업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사랑의열매는 2015년 주요 지방자치단체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5년간 350억원을 투입했다. 부산, 대구, 강원 등 3개 지역에 자립통합지원센터인 ‘희망디딤돌센터’를 운영 중이다. 만 18~25세 청소년에게 주거공간과 교육을 제공한다.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8396명이 지원을 받았다.

사업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다. 만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자립생활’ 부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겐 최대 2년간 1인 1실의 원룸형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요리, 청소, 재정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교육과 진로상담도 해준다. 보호가 종료되지 않은 만 15~17세에겐 미리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훈련 기회를 준다. 진로 상담, 사회적 기술 교육 등을 제공하는 ‘자립 준비’ 프로그램이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
전씨는 삼성 희망디딤돌에서 1년6개월간 주거공간을 제공받아 자립 경험을 쌓았다. 그는 “맨몸으로 들어와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배웠다”며 “입주 첫해에 배운 달걀찜과 된장찌개는 요즘도 맛있게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이곳을 나온 전씨는 올해 자립 3년차다.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승진도 했다. 전씨는 “도움을 받으며 자랐으니 더 씩씩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크다”며 “어려움을 겪는 보호 아동·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18년 3월부터 삼성희망디딤돌강원센터에서 생활한 유모씨(22)는 내년 초 자립을 계획 중이다. 유씨는 이곳에서 진로상담을 받으면서 자격증을 획득, 회계사무소에 취업했다. 권욱철 삼성희망디딤돌강원센터 대리는 “유씨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대구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조모씨(25) 역시 삼성 희망디딤돌 출신이다. 그는 2018년 5월부터 1년간 주거공간과 경제교육, 심리교육 등을 제공받았다. 그는 “도움을 받은 만큼 나눠드리고 싶다”며 “보호아동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 구미, 경기, 경남, 충남, 전북, 전남 등에도 희망디딤돌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전문위원인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만 18세 이상의 청소년을 위한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며 “준비 없이 시작한 자립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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