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건강악화 소식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할머니는 유일한 보호자였다. 절망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대구에 사는 전모씨(23·여)는 19세 때 그렇게 ‘나홀로’ 살게 됐다. 전씨가 아홉 살 때 별거하면서 집을 나간 부모는 연락도 닿지 않았다.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어요. 돌아갈 집이 없어서 펑펑 울다가, 나쁜 마음을 먹고 건물 옥상만 보며 걸었어요. 그러다 주먹을 꽉 쥐었어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 가정환경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건 억울하더라고요.”
4년이 지난 요즘 전씨의 일상은 다르다. “살맛이 난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지낸다. 전씨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잡게 된 동아줄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2016년부터 참여한 ‘삼성 희망디딤돌’을 동아줄에 비유했다.
삼성전자와 사랑의열매는 2015년 주요 지방자치단체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5년간 350억원을 투입했다. 부산, 대구, 강원 등 3개 지역에 자립통합지원센터인 ‘희망디딤돌센터’를 운영 중이다. 만 18~25세 청소년에게 주거공간과 교육을 제공한다.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8396명이 지원을 받았다.
사업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다. 만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자립생활’ 부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겐 최대 2년간 1인 1실의 원룸형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요리, 청소, 재정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교육과 진로상담도 해준다. 보호가 종료되지 않은 만 15~17세에겐 미리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훈련 기회를 준다. 진로 상담, 사회적 기술 교육 등을 제공하는 ‘자립 준비’ 프로그램이다.
2018년 3월부터 삼성희망디딤돌강원센터에서 생활한 유모씨(22)는 내년 초 자립을 계획 중이다. 유씨는 이곳에서 진로상담을 받으면서 자격증을 획득, 회계사무소에 취업했다. 권욱철 삼성희망디딤돌강원센터 대리는 “유씨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대구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조모씨(25) 역시 삼성 희망디딤돌 출신이다. 그는 2018년 5월부터 1년간 주거공간과 경제교육, 심리교육 등을 제공받았다. 그는 “도움을 받은 만큼 나눠드리고 싶다”며 “보호아동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 구미, 경기, 경남, 충남, 전북, 전남 등에도 희망디딤돌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전문위원인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만 18세 이상의 청소년을 위한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며 “준비 없이 시작한 자립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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