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한 '랜선 유학생'들 "밤낮 바뀐 폐인생활"

입력 2020-12-15 17:36   수정 2020-12-16 01:18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의 한 대학원에 입학한 박모씨(26)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한 이후 ‘올빼미족’이 됐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현지와의 시차로 인해 수업이 밤늦게 또는 새벽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밤에 수업을 듣고 새벽에 과제나 추가 공부를 하다 보면 아침 6시나 돼야 잠을 잔다”며 “오후 2시30분께 일어나는데 수개월째 이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현지에서 친구를 못 사귀니 언어도 잘 늘지 않는다”며 “내년에도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유학의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앗아간 유학생활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면서 상당수 유학생이 귀국해 이른바 ‘랜선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한 유학생은 “사실상 ‘사이버외국어대’에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시차 때문에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수업이 한국시간으로 밤이나 새벽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이에 생활패턴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학부생인 김모씨(21)는 “공대라 가뜩이나 컴퓨터를 많이 쓰는데 수업까지 온라인으로 들으니까 하루종일 컴퓨터만 보게 된다”며 “밤낮이 바뀌고 집에서 컴퓨터만 보고 있으니까 유학생활이 아니라 폐인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학생들이 꿈꿔온 해외 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국모씨(28)는 “한국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점 채울 수 있다고 하지만 학위 취득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 않느냐”며 “새로운 환경에서 타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그게 어려워 사실상 유학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美 유학비자 발급도 줄어
휴학하거나 입학을 연기하는 학생도 있다. 다음달 초 온라인 개강을 앞두고 있는 이지연 씨(26)는 입학 연기를 고민 중이다. 기대하던 유학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수업 오리엔테이션(OT)을 들었는데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시작한다”며 “OT만 들어봐도 앞으로 얼마나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할지 예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수업의 질이 높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며 “이럴 바에는 다음 학기에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올해 미국 유학 비자인 F1 비자 발급 건수는 크게 줄었다. 지난해 1~9월 약 1만7200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는 약 6500건으로 62% 줄었다.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유학 지원생이 줄었다”며 “다만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계획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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