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내리라면서, 너무 싸면 안된다니"…과기부 딜레마

입력 2020-12-15 12:02   수정 2020-12-15 14:20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신고만 하면 새 요금제를 출시할 수 있는 유보신고제를 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줄곧 가계통신비 인하를 강조해왔지만 정작 이동통신 사업자가 요금제 인하안을 마련하자 "상생하는 요금제를 내야한다"며 제동에 나서 업계 안팎에서 비난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30% 저렴한 온라인 5G 요금제 출시되나…과기부 '난색'
15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최근 과기부는 SK텔레콤이 판매 중인 5세대(5G)요금제보다 최대 30% 저렴한 온라인 요금제를 유보신고제 사전 협의에서 제안하자 "알뜰폰 시장 고사 위험이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지난 10일 정부의 유보신고제 도입 이후 신규 요금제를 두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 SK텔레콤의 5G 요금제는 △월 5만5000원(슬림·데이터 9GB) △월 7만5000원(5GX스탠다드·데이터 200GB) △월 8만9000원(5GX프라임·데이터 무제한) △월 12만5000원(5GX플래티넘·데이터 무제한)으로 구성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과기부 측과 사전 협의한 5G 신규 요금제는 기존 대비 최대 30%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면 신규 요금제는 월 데이터 9GB에 3만8500원, 월 200GB에 5만2500원, 데이터 무제한은 6만2300원 정도로 추정된다.

알뜰폰 요금제와 비교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거나 훨씬 더 저렴한 수준이다. 비슷한 조건으로 비교하면 알뜰폰 사업자들은 월 데이터 9GB를 3만6950원~4만3000원, 월 데이터 200GB를 6만800원~6만2700원에 제공 중이다. 월 데이터 9GB의 경우 요금이 알뜰폰 제공 가격 범위 안에 있고, 월 데이터 200GB의 경우 SK텔레콤이 알뜰폰보다 1만원이나 더 저렴하다.

과기부 측의 난색은 줄곧 가계통신비 인하정책을 추진해온 정부의 행보와 배치되는 것이다. 2018년 과기부는 월 2만원에 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 문자 무제한 등 내용을 담은 보편요금제를 추진한 바 있다. 올 초에도 과기부는 이통3사 최고경영자(CEO)에게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문했다. 또 내년부터는 1MB(메가바이트) 당 3.10원 데이터 요금을 2.34원으로 25%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도했다.
"요금제 정부 개입 없다" "사업자와 협의 필요" 두 목소리
논란이 커지자 과기부는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라며 "아직까지 SK텔레콤 측으로부터 공식 신고된 5G 이용약관(요금 및 이용조건)은 없다"고 지난 10일 공식 해명했다. 지난 14일 버스 와이파이 전국 구축 성과보고회에서 최기영 과기부 장관 역시 "(SK텔레콤의 온라인 저가 요금제 출시에) 제동을 건 것은 전혀 아니"라며 정부 개입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어 "다 같이 상생하는 게 필요하고 이용자 입장에선 적절한 요금제가 필요하다"며 "(요금 하한선은)알 수 없다. 사업자와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해당 발언을 놓고 사실상 정부가 유보신고제 하에서도 여전히 요금제 출시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자율적 요금 및 서비스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요금 인가제를 폐지했지만, '협의중'이라는 발언으로 정부 개입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강조해오던 과기부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유보신고제가 도입됐는데 과거 인가제와 같이 '협의' 관행이 여전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보신고제는 기존 유사 요금제 대비 비용 부담이 부당하게 높거나, 도매대가 보다 낮은 요금으로 경쟁사를 배제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검토해 반려하도록 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금제 출시전 사업자와 정부의 비공식적 협의 관행이 여전한 것을 보면 정부가 여전히 요금제 개입 및 규제의 권한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요금제 다양화라는 본래의 취지대로 유보신고제가 작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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