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에너지기업인 엑슨모빌이 5년 내에 온실가스 배출 강도를 2016년 대비 최대 20%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잇따라 탄소 중립 트렌드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강하게 요구한지 약 일주일만에 나온 조치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2025년까지 유전 관련 온실가스 배출 강도를 2016년 대비 15~20%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플레어링(에너지 가격이 낮거나 시판 운송 여력이 부족할 때 생산 과정에서 나온 천연가스 등을 일부러 태워버리는 행위) 강도를 35~45% 줄이고, 생산 과정에서 배럴당 메탄 방출량은 40~50% 줄일 계획이다. 평상시 플레어링은 2030년부터는 아예 끊는다.
엑슨모빌은 내년부터는 스코프3 탄소 배출량 수치를 매년 발표하기로 했다. 스코프3 배출량은 엑슨모빌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한 제품을 통해 발생하는 탄소의 규모다. 피트 트렐렌버그 엑슨모빌 온실가스·기후변화 담당 본부장은 "엑슨모빌 이해관계자들이 스코프3 배출량에 큰 관심을 보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탄소감축 계획을 요구했던 행동주의 펀드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엔진넘버원은 "배출 강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계획은 모두가 온실가스 총량을 줄이려 하는 시대에 장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내용이 딱히 없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투자를 추구하는 기관투자자 연합 세레스의 앤드류 로건 석유·가스연구부문장은 "전반적으로 미흡한 대책"이라며 "엑슨모빌의 탄소배출량이 심각한 지점은 제품 단계인데 관련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옥시덴탈이나 코노코필립스 등 동종업계 다른 기업들은 배출량을 기준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한 와중에 엑슨모빌의 대응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외신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엑슨모빌은 이번 계획에서 구체적인 배출량 관련 목표는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줄이는게 온실가스 배출 '강도'라면 원유나 가스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풍력이나 태양열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등 사업 방향을 전환한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많은 유럽 에너지기업들과 달리 엑슨모빌의 새 목표는 단순히 자체 운영과정에 걸쳐 나오는 스코프1·2에만 적용된다"고 썼다.
엑슨모빌은 최근 투자자들로부터 새 에너지 트렌드에 대응하라는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저탄소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전략이 부족할 경우 실질적인 경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7일엔 미국의 신생 투자기업 엔진넘버원이 엑슨모빌 이사회에 풍력기업 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등 신규 이사 네 명을 선임하겠다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10명으로 구성된 엑슨모빌 이사진 중 40%를 갈아치우겠다는 경고다.
엔진넘버원은 "탄소배출량 감축과 수익성을 모두 잡을 수 있도록 엑슨모빌이 신재생에너지에 상당히 투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업 방향을 바꿔야한다는 근거로는 엑슨모빌이 시대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동종업계 다른 기업에 비해 주가와 실적이 나쁘다는 점을 들었다.
엔진넘버원은 미국 2위 연기금인 ‘큰 손’ 캘리포니아주 교직원연금(CalSTRS)의 적극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연금이 보유한 엑슨모빌 주식 규모는 3억달러가 넘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일엔 영국성공회 연기금도 엑슨모빌에 대한 '친환경 압박'에 가세했다. 로이터통신은 "영국성공회 연기금은 엑슨모빌이 친환경 에너지로 사업을 전환하기 위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엑슨모빌 주가는 주당 42.22달러에 장을 마쳤다. 전 거래일 대비 주가가 3.61% 내렸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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