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GDP 넘어선 가계부채

입력 2020-12-16 17:47   수정 2020-12-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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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 400개 이상의 민간은행 및 투자회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글로벌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의하면, 올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0.6%로 가계부채가 GDP 규모를 초과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하는 기준치 80%를 훌쩍 넘긴 수치다.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선 것은 초유의 일이다. 열심히 벌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조사 대상국 중 레바논(116.4%)을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폭발 사고 충격으로 GDP가 갑자기 25%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진 레바논을 예외적인 사례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계부채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미국 81.2%, 일본 65.3%, 유로존 60.5%인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높은 편이고, 그 상승폭도 7%포인트로 나타나 일곱 번째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올 1분기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97.9%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계부채비율 세계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빚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은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가계와 기업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BIS는 국가별 민간 부문 신용 위험도를 평가하는 지표인 신용갭을 ‘주의’에서 ‘경보’로 격상했다. BIS가 집계하는 신용갭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 명목GDP 대비 민간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부채위험 평가지표로서 2% 미만이면 ‘보통’, 2~10%면 ‘주의’, 10% 이상이면 ‘경보’ 단계로 분류한다.

그동안 지속돼온 글로벌 저금리 현상으로 가계부채가 증가한 측면이 있지만,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주요 원인이 정부의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이라는 점에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현 정부가 24회에 이르는 부동산 정책을 끊임없이 발표하는 동안 집값의 안정은 고사하고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와 주택자금 수요만 폭증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잔액은 1682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44조9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증가폭이 역대 두 번째로 크다. 2분기 증가폭 25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증가다. 지난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자마자 8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이 11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어 9월에도 9조6000억원으로 역대 세 번째를 기록했다.

부동산시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법의 시행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사람들의 ‘패닉바잉’에 불을 지른 셈이 됐다. 3분기엔 2분기에 비해 주택담보대출이 매우 많이 늘어났고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도 역대 최대치로 증가했다. 정부는 집값이 안정돼가고 있다고 하지만 실수요자와 공급자가 주택시장에서 느끼는 가격은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폭등하고 있다. 특히 거주하고 싶어하는 지역의 주택가격이 치솟는다면 평균 주택가격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없게 된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 실질소비여력을 위축시켜 경기회복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소득 증가가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채무상환능력이 악화돼 금융 부문의 신용경색은 물론 실물경제로까지 위기가 옮겨가는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가계가 빚에 짓눌려 있는 한 민간소비가 회복되기 쉽지 않다. 올 3분기 민간소비는 작년 동기 대비 4.4% 줄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이다. GDP에서 약 50%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회복되지 못하면 경기 진작은 어려워진다. 치솟는 주택 관련 비용을 충당하느라 소비 위축이 심해지고, 보유자산을 다 처분해도 소비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난다면 가계부채발(發) 경제위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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