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가전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최근 골판지 상자를 구하지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었다. 수출할 제품은 있는데 이를 포장할 상자가 없어 수출 일정을 미뤘다. 이 회사 대표는 “상자가 없어 수출 스케줄이 꼬이는 건 창사 1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스 대란’의 불똥이 중소 수출업체로 튀고 있다.
▶본지 11월 30일자 A2면 참조
골판지 상자 원지의 원료인 폐지 수입에 제동이 걸린 데 이어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대양제지와 골판지 회사 신안피앤씨가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화재를 겪으면서 골판지 상자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포장용 상자를 구하지 못해 수출을 늦추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골판지 상자의 수요와 공급 간 심각한 불균형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택배 수요가 늘면서 시장에선 골판지 상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반면 골판지업계는 원지를 만드는 폐지 수입이 어려워진 데다 연이은 공장 화재로 상자 출하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자연히 가격도 뛰었다. 먼저 골판지 원지 가격이 20%가량 올랐다. 이어 골판지업계가 최근 월 3만3000t의 공급 차질을 호소하며 상자 가격을 인상했다. 골판지 시장은 골판지 원료인 원지를 비롯해 골판지 겉면 및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을 생산하는 골판지 원단, 골판지 박스 등 세 단계 생산 과정별로 구성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선 20~25%가량 골판지 상자 가격이 뛴 상태”라고 전했다.
가격 인상에도 여전히 골판지 상자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한 골판지 원지 및 제품 생산업체 관계자는 “새벽부터 각종 업체들이 회사 앞에 트럭을 대기시켰다가 상자를 가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중소 수출업체 관계자는 “연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수요 물량이 큰 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작은 업체들은 직접 뛰어다니며 포장용 상자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골판지 수급 대란이 다음달 중순까지는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통상 설날(2월 12일)을 한 달 앞둔 시점부터 택배 물량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골판지의 수급 불균형이 더 심각해지면 설 시즌을 앞두고 물류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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