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선뜻 여행 이야기를 꺼내기도 두려워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선택한 여행지는 단양입니다. 이번에는 단양으로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막힌 풍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이른바 ‘풍경맛집’으로 불리는 단양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잠시라도 대리만족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져서 조금 더 안전해질 때 직접 들러보세요. 화첩 속에서만 봤던 놀라운 풍경이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옥순봉은 퇴계 이황의 흔적이 듬뿍 묻어 있는 곳이다. 희고 푸른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 해서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인 이도 퇴계다. 단양군수 시절 퇴계는 당시 청풍군이었던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풍부사 이지번(토정 이지함의 형)에게 부탁할 정도로 애착이 강했다. 옥순봉 바로 옆에 있는 높이 330m의 구담봉은 커다란 거북이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이 층을 이룬 봉우리는 화려하고 웅장하다. 퇴계는 구담봉을 이렇게 노래했다. ‘천 가지 형상과 신령스레 솟은 바위는 귀신이 새긴 솜씨이고/ 아득히 높은 봉우리 위엔 신선이 노니는가/ 남쪽 바위에는 이끼조차 푸르러서 경계가 거룩하니 선경의 구곡 같네.’
사인암은 고려말 대학자이자 주역의 대가인 우탁이 사인이라는 벼슬을 할 때 은거한 곳이다. 우탁을 흠모했던 조선 성종 때의 단양군수 임제광이 사인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특한 풍광 때문인지 사인암은 수많은 명사가 거쳐 간 이른바 ‘핫 플레이스’였다. 추사 김정희는 사인암을 보고 ‘하늘이 내려준 한 폭의 그림’이라고 극찬했다. 단원 김홍도는 사인암을 자신의 화폭 속에 끌어들였다. 무려 1년이나 걸린 작업 끝에 완성한 것이 그 유명한 ‘사인암도’다.
사인암은 지금도 그렇지만 단양을 찾은 이들이 꼭 한 번은 찾아와 쉬어가던 곳이다. 사인암을 찾은 이들은 유람을 기념해 돌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거나 멋들어진 시를 남기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찾았는지 이름을 새길만 한 여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다. 오죽했으면 조선 후기 문인화의 대가 이인상은 “향기는 날로 더하고 빛 또한 영롱하니 구름 꽃 같은 이 절벽에 삼가 이름을 새기지 말지어다”라는 일종의 경고문을 남기기도 했다.
도담삼봉도 단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겨울 초입 삭풍에 나뭇잎도 떨어지고 스산해질 만도 한데 남한강 가운데 세 개의 봉우리가 섬처럼 떠 있는 풍경은 언제봐도 감동적이다. 도담삼경 중 가운데 봉우리에는 삼도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얹혀 있다.
단양팔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이곳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길 만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오죽했으면 그의 호가 ‘삼봉’이었을까. 풍광 자체가 회화적이어서 김홍도는 물론 겸재 정선, 호생관 최북까지 모두 도담삼봉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다. 문인이라고 해서 감동이 다를 수는 없다. 도담삼봉을 노래한 한시만 해도 무려 131수나 된다고 한다. 가히 ‘조선 최고의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단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길이 있다. 단양강 잔도(棧道)다. 잔도란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단양강 잔도는 상진대교부터 강변을 따라 적성면 애곡리 만천하스카이워크를 잇는 길이 1.2㎞, 폭 2m의 산책로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가늘고 긴 띠가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빛 길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한다. 낙석이 떨어질 만한 구간은 지붕을 덮어 안전에 신경 썼다.
단양강 잔도는 특히 밤이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조명이 켜지면 불빛이 강물에 반사돼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코로나 시대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고통의 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단양=글 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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