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속에 전화벨이 울린다.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중년 남성이 도청 중인 형사들과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울시 청년수당 신청했습니까.” 남성이 “네”라고 답하자 “면접 정장 무료 대여 취업날개 서비스는요?”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남성은 딸의 사진을 바라보며 애타는 심정으로 답을 해나간다.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럼 서울형 뉴딜 일자리는요?” 잠시 당황하는 남성, 기억을 더듬어보더니 “다 했습니다. 이제 우리 딸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묻는다. 답이 돌아온다. “취업되셨습니다.” 남성은 “취업!”이라고 소리치며 기뻐한다.
17일 서울 순화동 프레이저플레이스센트럴에서 열린 제7회 서울 29초영화제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한 최형규 감독의 ‘서울아 구해줘~!’다. 최근 취업난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서울시 청년정책과 연결해 풀어냈다. 재미있는 설정과 세련된 연출로 호평받았다.
서울특별시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서울에게’다. 서울에 살면서 즐겁고 고마웠던 순간을 떠올리고, 서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 다양하게 출품됐다. 공모 기간(11월 12일~12월 11일)에 접수된 출품작은 총 564편. 서울 29초영화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 중 1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일반부 최우수상은 ‘서울우먼’을 제작한 이명선 감독에게 돌아갔다. 영상이 시작되면 망토를 입은 서울시민의 수호자 ‘서울우먼’이 등장한다. 그는 여성들을 위협하는 변태괴물, 장소 불문하고 담배를 피우는 골초괴물을 차례로 물리친다. 그런데 갑자기 강력한 괴물이 등장한다. 시민들을 전염병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 괴물’이다. 서울우먼은 잠깐 멈칫하지만,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거리두기 빔을 뿜어내며 괴물을 물리친다. 복고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코믹한 연출로 웃음을 주고, 서울시의 정책도 잘 담아냈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은 ‘서울아, 내 인생의 무대가 되어줘서 고마워!’를 제작한 김예빈(천안오성고) 이예진(천안청수고) 감독이 차지했다. 한 여학생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그는 “서울살이 19년차인 나에게 지하철은 누워서 떡 먹기”라고 얘기하다 말끝을 흐린다. 지하철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해 급히 뛴다. 이런 서툴고 지친 일상에도 그는 환히 웃으며 “서울에서 인생이라는 연극을 찍는 중”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하는 멜로신도 있고, 자전거를 타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코미디신도 있다. 남자친구로부터 갑자기 헤어지자는 연락을 받고 한강 다리 위에서 엉엉 울며 시원하게 욕을 내뱉는 막장 드라마신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장면이 전환된다. 여학생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메시지를 남긴다. “서울아! 내 인생의 무대가 되어줘서 고마워.” 서울에서 느끼는 감정을 다채롭게 담아냈다. 청소년부 특유의 유쾌함도 살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반부 우수상을 받은 김근영 김수호 감독의 ‘말하지 않아도’는 형사가 한 여성을 취조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서울에 사는 24세 여성은 젊은 나이에도 많은 금전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형사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배후가 누군지 묻는다. 그러자 여자는 “서울이요”라고 답한다. 형사도 서울에 살았지만 서울시 정책에 대해 잘 몰라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여성은 서울시 정책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내 손안에 서울’이란 온라인 플랫폼을 알려준다.
원소연 백지현 감독의 ‘나의 꿈을 지켜준 서울에게’도 일반부 우수상을 차지했다. 가수의 꿈을 키워온 한 여성은 코로나19로 길이 막히자 꿈을 포기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이동식 공연장 ‘문화로 토닥토닥-마음방역차’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청소년부 우수상을 받은 김선재 감독(작전고)의 ‘OOO 덕분에 안심^O^’은 공부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다. 어둡고 위험한 골목길이지만 안전한 귀가를 돕는 서울시의 ‘안심이’ 앱을 사용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시상을 맡은 서울시의 김우영 정무부시장, 박진영 시민소통기획관, 유재명 시민소통담당관이 온라인으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한국경제신문의 김정호 사장, 박성완 편집국 부국장도 함께 시상하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수상자와 가족 400여 명은 온라인 방송에 접속해 영광의 순간을 즐겼다. 수상자들에겐 총 2000만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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