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시초가부터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세를 지켜서 다우는 0.49%, S&P 500 지수는 0.58% 올랐고, 나스닥 지수는 0.84% 상승했습니다. 종가 기준 모두 사상 최고치입니다.
개장 전 나온 주간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전주보다 2만3000건 늘어 88만5000건에 달했습니다. 이는 시장 예상(80~82만 건)을 훨씬 넘었을 뿐 아니라, 지난 9월 초 이후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9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 타결 임박을 시사하는 민주당, 공화당 지도부의 발언에만 집중했습니다. 협상이 진전을 보이던 지난 사흘간 S&P 500 지수가 계속 오른 게 이를 대변합니다. 양당은 아직 세부안에 완전히 합의하지는 못했습니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하루 이틀짜리 초단기 임시 예산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밝힌 걸 보면 주말께 협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날은 소형주, 가치주도 올라서 기술주와 함께 모두 강세를 보였습니다. 가치주와 성장주가 돌아가며 올라서 시장의 폭을 넓히는, 그런 바람직한 추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미 중앙은행(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어제 병속의 지니를 풀어놓은 게 아닌가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병속의 지니는 인플레이션이 풀리는 걸 말하는데, 지금은 인플레는 아니고 달러의 홍수, 그리고 자산 버블을 말합니다.
파월 의장은 어제 2023년까지 향후 3년간 경기가 계속 나아질 것이란 기존보다 낙관적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그 때까지 제로금리를 지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언제든 필요하다면 자산매입 규모를 늘리거나 매입하는 채권의 만기를 확대하겠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재정 부양책의 필요성을 또 다시 강조했지요.
이 세 가지 발언은 모두 달러를 더 푸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에 따라 이날 달러 가치는 급락해서 ICE 달러 인덱스를 기준으로 9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하루만에 0.7% 가량 떨어져 89.7까지 떨어진 겁니다. 2018년 초 이후에 처음입니다. 지난 3월 말부터 따지면 12.5%나 내렸습니다.
달러는 기축통화입니다. 모든 자산의 기준가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달러가 떨어진다면 자산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영향 탓인지 이날 비트코인은 순식간에 2만3000달러를 넘었습니다. 비트코인은 금과 함께 달러의 대체재로 꼽히고 있지요.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달러는 미국의 성장, 통화와 재정정책, 그리고 금융시장 심리에 의해 움직이는데요. 우선 내년 미국의 성장률은 개선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유럽, 개도국 등 글로벌 성장률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미국의 통화와 재정 정책은 말할 것도 없이 완화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투자 심리는 백신 보급 등으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로 급격히 기울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달러 약세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올해 3조1000억 달러에 달했고, Fed도 3조 달러 정도를 더 풀었습니다. 내년에도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올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풀려면 올해 이상으로 국채를 찍어내야 합니다. Fed는 현재 분기당 2400억 달러씩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Fed가 이를 두 배 정도로 늘려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파월 의장이 언급한 자산매입 확대는 시간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 국채 시장에서 게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 국채의 50%를 보유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 35%만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올 들어 국채를 다섯 달 째 매각중입니다.
Fed가 누르고 있기 때문에 미 국채 금리는 10년물 기준으로 아직 연 1%를 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상승할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월가 대부분 금융사가 내년 1~1.6% 사이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채 값이 계속 떨어진다는 얘기인데, 이런 시점에서 누가 섣불리 국채 투자를 늘리겠습니까.
게다가 내년 1월5일 조지아주에서 상원의원 두 석의 결선투표 결과가 나옵니다. 만약 민주당이 두 석을 모두 승리해 상원의 지배권을 가져간다면 미국 정부의 재정 지출은 지금 예상보다 더 훨씬 커질 수도 있습니다. Fed가 훨씬 더 많은 달러를 찍어내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JP모간은 이런 요인을 봤을 때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미국 시장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투자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월가의 유명 투자자 피터 시프의 경우 달러화가 사상 최저 수준을 깨고 내려갈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사상 최저 기록은 달러인덱스 기준으로 71입니다. 앞으로 20% 이상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씨티그룹도 내년에 2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달러 약세를 막으려면 Fed가 정책을 바꿔야하겠지요. 월가 일부에선 Fed가 중장기적으로도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거둬들이기가 어렵지 않겠냐고 관측하기도 합니다.
금융시장이 이미 달러화 홍수에 중독된 탓입니다. 어제 파월 의장은 "10년물 국채 금리에 비하면 지금 자산 가격은 위험요인이 많지 않다"고 말했었는데요. 증시는 지난 3월말 이후 계속 올라왔고,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월가 금융사들의 S&P 500 지수 내년 말 목표치를 보면 JP모간이 4400, 골드만삭스가 4300에 달하는 등 강세장을 예측하는 곳이 압도적입니다. 월가 금융사들의 콘센서스가 4000을 넘습니다.
미국 증시엔 미국인들의 연금 자산이 몰려있습니다. 대표적인 직장인 연금인 401k는 상당수가 주식 6, 채권 4 정도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Fed가 정책을 돌린다면 증시가 폭락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가계소득이 이미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진 상황에서 Fed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가는 미국 경제 전체를 망칠 수가 있습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은 2016년 양적긴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금융시장이 본격적으로 흔들리자 파월 의장은 손을 들었습니다. 3년 만에 끝난 겁니다. 그 기간 동안 Fed가 안간힘을 썼지만 기준금리를 0~0.25에서 2.25~2.5%로 높이는 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Fed의 자산은 약 1조 달러 밖에 줄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국 정치권도 점점 돈에 중독되고 있습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하원 의원 등 민주당 급진파 일부에서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MMT)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달러를 찍어내 그린딜 등에 투자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날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새로운 재정 부양책에 1인당 600달러 지급방안이 포함된 데 대해 "이를 반대해야한다. 이를 합의하려는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그동안 1인당 2000달러 지급을 주장해왔습니다. 1인당 600달러는 너무 적다는 뜻입니다. 젊은 층이 부상하면서 이들 급진파가 더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선 학자금 탕감도 정책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UBS는 이날 데일리 보고서에서 추가 달러 하락을 예상했습니다. 백신개발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도는 낮아지고 있는데 Fed는 여전히 완화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부양책을 통과시키기 직전이라는 겁니다. 약달러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라고 조언했습니다.
달러화의 타락은 비트코인 값도 부추기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날 12% 급등한 2만370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전일 사상 처음으로 2만 달러 선을 뚫은 데 이어 사상 최고치를 더 높였습니다. 비트코인 강세론자들은 지금 상승세는 기관투자자의 시장 참여에 기반한 것으로 2만 달러 진입을 앞두고 붕괴됐던 2017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폴 튜더 존스, 스탠리 드러켄밀러 등 월가의 유명 투자자들이 올해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스콧 미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은 희소성 등을 들면서 비트코인의 목표가로 40만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모멘텀펀드, CTA 등 퀀트 펀드 등도 대거거래에 나서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FOMO(Fear of Missing Out: 혼자 뒤처질까 두려워 매수에 가담하는 것)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제이 클레이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비트코인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을 막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잊지말자. 그런 시각을 잊으면 안된다"며 규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시사했습니다.
금에 대해서도 여전히 강세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코메르츠뱅크는 이날 금 가격이 내년 평균 온스당 2000달러를 유지하고 4분기에는 23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역시 달러화 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면 대체재인 금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금은 현재 185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올 들어 21%나 오른 겁니다.
달러화 약세는 원자재, 상품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구리 값이 7개월래 최고로 치솟아 t당 7800달러까지 오른 데는 글로벌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달러 약세도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화를 기초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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