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진보 진영’을 들락거린 노회한 정객이 비상대책위원장이라지만, 중도보수 진영을 대변해온 정당이기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 ‘시장경제를 앞세운 민간 주도성장을 촉진한다’는 당헌(1장 2조)을 가진 정당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행보다. ‘기업규제 3법’ 강행 통과 등 입법 테러를 벌이는 거대 여당을 견제해도 모자랄 제1야당이 더 센 법안을 내놓은 것은 포퓰리즘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처벌을 명시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시행 1년도 안 돼 이를 대체할 비상식적 대체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법치’를 강조해온 자유민주 정당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다.
근로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을 한꺼번에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산업재해 처벌을 강화한 특별법을 제정한 유일한 국가인 영국에서도 법인만 처벌할 뿐이다. 원청 책임 역시 실질적 지휘권이 있을 때만 묻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원청 책임자를 지정해 하청 사업주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673개의 조문을 통해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산안법과 달리,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무를 부과한 점도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배치된다. 처벌 강화가 문제 해결 방식이 될 수 없음은 영국에서 ‘기업과실치사법’ 제정 이후 산업재해가 미미하나마 상승곡선을 그리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올해 나온 법안 중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게 213건에 달하지만 격려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개탄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불분명한 입장이 여당의 입법을 밀어붙이는 배경이 된 것 같다”는 뼈 있는 지적도 했다. “거대 여당의 입법테러”라는 비난을 입에 달고 살면서 꼭 닮아가는 야당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야당마저 포퓰리즘을 좇으면 소(경제)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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