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지난 3월 저점을 찍고 2400선까지 내달리는 동안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수차례 이런 경고음을 냈다. 개인 주도 장세는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은 늘 상승장 끝물에 들어왔다가 물리곤 했다는 경험적 편견도 더해졌다. 주식시장 과열이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잇따랐다.
2700선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개인은 증시 소방수 역할을 자처했다. 지난달 30일 외국인 투자자는 사상 최대 규모로 한국 주식을 팔았다.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437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은 공포에 질리는 대신 주식을 샀다. 2조220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역시 최대 규모였다. 코스피지수는 1.60% 하락하는 데 그쳤다. 2600선을 돌파한 직후였다. “이미 많이 올랐다”는 우려에도 개인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주워 담은 건 외국인 투매가 ‘기계적 매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날은 MSCI 신흥시장(EM)지수 개편이 있던 날이었다. 코스피지수는 보름 여만에 6.98% 오른 2772.18(18일 기준)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다.
올 들어 개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가장 많이 순매도한 날은 지난 7월 28일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를 9000억원어치나 순매수했다. 인텔의 7나노 공정 지연 소식에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개인은 이날 주저하지 않고 9000억원어치를 던졌다. 이미 코로나19로 주가가 저점을 찍은 3월부터 삼성전자를 차곡차곡 사 모았다가 차익실현에 나선 것이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5.4% 급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그린뉴딜을 발표한 7월 셋째 주 현대차 주가는 20% 가까이 올랐다. 개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3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 밖에 LG화학 등과 같은 주도주를 박스권에 사서 고점에 파는 ‘신공’을 보여줬다.
주요 변곡점마다 투자 전략도 진화했다. 변동폭이 컸던 3월엔 삼성전자처럼 망하지 않을 기업을, 4월부턴 코로나19 수혜주였던 카카오·네이버를 포함해 BBIG(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 기업으로 이동했다. 정책 모멘텀이 커졌던 7월부터는 그린뉴딜과 같은 정책 수혜주로, 11월부턴 경기 회복 수혜가 기대되는 반도체 등 경기민감주로 이동했다. 시장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선택을 받아야 주가가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개인의 기묘한 취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젠 개인이 시장을 움직이는 명실상부한 대표 선수가 됐다.”
개인의 ‘달라진 위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개인은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과정에서도 기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다. 전통 배당주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LG화학 등의 성장주가 배당을 늘리는 것도 주목된다. LG화학은 반발하는 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3년간 매년 주당 1만원 이상 배당하겠다는 주주 환원 전략을 내놨다.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경영진과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숙제다. 다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방향성이 같다는 점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개인이 기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성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경영진이 성과를 내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면, 개인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지하고 지켜주는 ‘어벤저스개미(우호세력)’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64조7227억원
올해 개인투자자 순매수 규모(역대 최대). 2018년 10조9330억원을 순매수했던 개인은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피해 5조4839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3월에만 11조4900억원을 사들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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