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11년 만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전격 신청하면서 ‘2009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법정관리 개시 보류를 함께 신청하고, 전체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던진 만큼 배수진을 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정관리 개시 보류 기간에 외국계 은행, 대주주 등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전망이다.
외국계 은행, 대주주 지원 이끌어낼까
쌍용차가 21일 전격 법정관리를 신청한 1차적 원인은 지난 14일 만기가 돌아온 외국계 은행 차입금 600억원을 갚지 못해서다. 은행별로는 JP모간 200억원, BNP파리바 100억원, BoA메릴린치 300억원 등이다. 이날엔 산업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900억원과 우리은행 대출금 150억원의 만기까지 돌아왔다. 쌍용차는 15일 “경영 상황이 악화돼 자금이 부족했다”며 “만기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국계 은행과의 만기 연장에 실패하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게 쌍용차의 설명이다.대출을 연체했다고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체 이자를 물면서 계속 협상을 벌일 수 있다. 산은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만기 연장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는 그러나 주말 동안 법정관리 신청으로 방향을 틀고 채권단에도 이 같은 계획을 전달했다.
일각에선 쌍용차의 법정관리 신청이 외국계 은행은 물론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을 겨냥한 ‘압박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쌍용차는 이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법정관리 개시 여부 보류 신청서를 함께 냈다. 이는 법원이 법정관리 개시를 최대 3개월 연기해주는 제도다. 채권·채무 동결에 따라 회사는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보류 기간 동안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해 법정관리 신청을 취하하면 회사가 다시 정상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쌍용차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당분간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 법정관리 개시 보류 기간에 채권자, 대주주 등과 이해관계 조정에 합의하고 진행 중인 투자자와의 협상도 마무리해 조기에 법원에 법정관리 취하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힌드라도 보류 기간 중 대주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이해관계자와의 협상 타결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는 게 쌍용차의 설명이다.
만약 이해관계자 합의에 실패해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관리인이 실사를 벌인 뒤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를 비교한다. 계속기업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면 채권자, 주주, 임직원 등이 손실을 분담한 뒤 경영 정상화 계획을 밟는다. 이 경우 외국계 은행, 마힌드라의 손실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에 판매 곤두박질
쌍용차의 이 같은 전략은 어려워진 경영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주주인 마힌드라가 자금지원을 끊고 손을 떼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마힌드라는 올 1월 23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지원 방침을 밝혔다가 4월 들어 이를 철회하고 400억원만 투입했다.코로나19로 마힌드라 역시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쌍용차에 대한 지원을 끊을 테니 ‘알아서 생존하라’는 신호가 강했다.
그러는 사이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된 쌍용차는 자산매각을 통해 버텼지만 결국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쌍용차 회계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이 2분기 보고서에 대해 감사의견 제출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3분기까지 15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삼정회계법인은 3분기 보고서에서도 “309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5357억원 많다”며 감사 의견을 거절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쌍용차가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법정관리라는 벼랑 끝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신형 렉스턴 출시 등으로 내수가 되살아나는 시점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2009년에도 법정관리 절차를 밟았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고, 경찰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2010년 새 주인인 마힌드라를 만났고, 2011년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쌍용차는 “협력사와 영업 네트워크, 금융기관,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한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며 “긴급 회의를 통해 전체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더 탄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일규/강경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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