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생인 손 후보자는 농협금융지주 경영기획부문장을 거쳐 지난 3월부터 농협은행장을 맡고 있다. 5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첫 ‘1960년대생’이다. 1대 신충식 회장 이후 9년 만의 농협 내부 출신이 농협금융회장에 선임되는 것이다. 신 전 회장이 농협금융이 출범한 2012년 3개월 동안만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 후보자를 사실상 ‘첫 내부 회장’으로 볼 수 있다.
농협금융 회장 자리는 줄곧 차관급 이상의 경제관료가 차지했다. 정책금융을 많이 다루는 특성 때문에 낙하산 관행이 점차 굳어졌다. 농협금융은 효과도 작지 않게 누렸다. 3대 임종룡 전 회장은 현재 농협금융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를 성사시켰고, 4대 김용환 전 회장은 조선해양 분야 기업금융 부실을 대거 털어낸 ‘빅배스 전략’을 펴 최근의 ‘연 순이익 1조원 시대’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된다.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다. 회장들이 정부와 이견 조율에 집중하면서 농협금융만의 색깔은 약했다는 평을 들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10여 년간 크게 몸집을 불린 4대 금융지주에 비하면 농협금융은 인수합병(M&A)과 전략 전환 속도가 느렸다”며 “2년 임기마다 관료 출신 회장을 데려오다 보니 조직 장악력과 기민함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농협 내부에서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금융정책에 민간 금융지주보다 더 많이 동원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출범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내부 출신은 중용받지 못해 조직원들의 사기 문제도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협금융 임추위는 이준행 사외이사(임추위원장) 등 4명의 사외이사와 농협중앙회 추천 위원인 정재영 낙생농협 조합장 등 총 5명이다. 100% 지분을 농협중앙회가 보유해 결국 농협중앙회의 의중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 최근의 관피아 논란과 노조 반발 등이 ‘내부 출신’을 중용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협금융 노조(금융노조 NH농협지부)는 최근 “관료 출신 낙하산 회장의 선임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성희 중앙회장이 관피아를 추천받았다는 설이 파다했다”며 “그러나 중앙회장 직선제가 골자인 농협법 개정안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내부 출신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농협중앙회 감사위원 시절부터 손 후보자를 오래 지켜봐왔고, 디지털 금융에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협금융 차기 회장은 조만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간이다. 차기 회장이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지, 관료 출신 회장이 맡아오던 정부와의 조율 역할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과제로 꼽힌다. 일각에선 중앙회장의 입김이 강한 농협의 특성상 이 회장의 ‘친정체계’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스마트뱅킹 이끈 '디지털금융 戰士'
그는 2015년부터 농협은행의 스마트전략부장을 맡아 보안사고로 휘청이던 은행을 정상화했고 농협의 NH스마트뱅킹, 올원뱅킹 등 뱅킹 앱 개편을 이끌었다. 농협은행이 오픈 API를 국내 은행 중 최초로 도입한 것도 손 후보자의 공이 컸다. 오픈 API란 은행의 정보를 누구든 프로그램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프로그래밍 명령어 묶음(소스 코드)을 말한다. 농협은행의 오픈 API는 핀테크산업 태동에 큰 도움을 줬고, 하나의 스마트폰 앱으로 모든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오픈뱅킹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핀테크와 빅테크의 공세에 대해선 ‘경쟁’보다 ‘협력’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로 꼽힌다. 손 후보자는 농협은행장에 재직하면서 통신과 e커머스 등 이종(異種) 업체와의 제휴에 공들였다.
김대훈/강진규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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