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신데믹 시대'의 호모 마스쿠스

입력 2020-12-22 17:47   수정 2020-12-23 00:20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라틴어로 ‘지혜로운 사람’을 뜻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도구와 언어를 사용해 문명을 일군 현생 인류의 학명(學名)이다. 가장 큰 특징은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과 논리·이성을 갖춘 사고력이다. 이는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인간은 모두 같은 종에 속한다. 그래서 전염병에 약하다. 에이즈나 매독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비롯됐지만 유럽과 아시아 등 전 대륙에 퍼졌다. 코로나19도 중국에서 발병하자마자 세계를 감염시켰다. 지난해 12월 말 시작된 ‘코로나 위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사회학자들은 올해를 ‘호모 마스쿠스(Homo maskus·마스크를 쓴 인간)의 해’라고 부른다. 인류가 ‘얼굴의 절반을 잃었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마스크는 얼굴의 60~70%를 가린다. 언어와 표정을 통한 감정 표현을 방해한다. 자연히 대화가 막히고 소통이 단절된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이 고작 격리와 마스크라니,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가 무색하다.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 마스크를 쓰는 이유 중 ‘내가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가 76%, ‘가족·타인을 위해서’가 73%로 나타났다. ‘나’와 ‘주변’의 안전을 위해 저마다 ‘호모 마스쿠스’가 되는 것을 자청하고 있다.

문제는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마스크를 벗기 어렵다는 점이다. 백신이 무증상 감염까지 막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은 “무증상 감염이 확진자 중 40%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도 “백신 접종자의 전염 가능성은 남아 있다”며 “마스크를 절대로 벗지 말라”고 조언했다.

여기에 겨울철 독감 등 호흡기 유행병과 고농도 미세먼지, 황사까지 막아야 한다. 이른바 ‘신데믹(syndemic) 위기’다. ‘신(syn-)’은 ‘함께’ ‘동시에’라는 뜻의 접두어, ‘데믹(-demic)’은 유행병(epidemic)을 의미한다. 즉 두 개 이상의 유행병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비말(침방울) 차단용 마스크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기 중에는 비말보다 미세한 에어로졸 상태의 바이러스가 떠다니므로 고효능의 방진·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얘기다. 내년쯤 치료제가 나온다 해도 당분간은 ‘호모 마스쿠스’의 운명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신데믹 쇼크’를 막는 묘약도 아직은 마스크밖에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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