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이 22일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보낸 A4용지 6장 분량의 이메일에서 “회사 경영자는 누구보다도 자기 사업장과 임직원의 안전 및 행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지난 50년간 산업현장을 누빈 한 중소기업 경영인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추진하는 거대 여당에 “입법에 신중해달라”며 호소문을 보낸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거나 중대한 상해를 입었을 때 사업주, 경영 책임자, 공무원을 막론하고 징역형 등 강한 처벌을 내리도록 한 법이다. 사고가 발생한 법인은 영업 취소까지 당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안전수칙과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입찰 제한 등의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기업이 일시에 도산에 이르거나 경영이 마비될 정도의 엄벌은 예방 효과보다 기업 종사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 택시가 사고를 냈다고 택시회사 오너를 처벌한다고 해서 다른 택시의 사고가 예방되지는 않는다”며 “안전사고가 났다고 경영자를 감옥에 가두면 나머지 임직원의 안전은 누가 돌보고 경영은 누가 하며 고용은 어떻게 보장하느냐”고 되물었다.
1970년 현대건설 고졸 공채 1기 출신인 정 회장은 수산중공업 등 건설·발전소 분야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이메일을 받은 양 최고위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노사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집권 여당이 책임 있는 입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이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경제단체는 “산재사고의 발생 책임을 모두 경영자에게 돌리는 것은 과도하다”며 “처벌 중심의 산업안전 정책을 계도와 예방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고예방 위한 대안 제시…與 양향자 최고위원도 "공감"
정 회장은 그러나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산업계에 미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안전이란 과학과 제도로 예방하고 감소시킬 수 있지 엄벌로 근절시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 회장은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세계의 무역 물동량을 실어나르는 선박 수가 5만 척이 넘는다”며 “모두 안심하는 것은 모든 기자재와 부품이 국제선급협회(IACS)가 정한 등급에 합격한 제품을 썼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설비에 사용되는 모든 용품은 정부에서 인증제를 보강하고 품질 등급제를 시행하자”며 “산업현장이 안전을 넘어 안심할 수 있는 직장으로 개선돼나갈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 회장은 또 “모든 산업현장의 안전관리를 한 가지 규정으로 적용하기에는 산업별 특성도 다양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무리가 있다”며 “우선 재해발생 빈도가 높은 건설공사업과 시설유지관리용역업에 한해 안전설비전문공사업 면허를 도입하자”고 했다. 이어 “위험한 장소의 작업은 반드시 숙련된 사람이 수행하도록 강제하고, 비숙련 작업자가 작업을 수행할 경우 최소한 숙련자와 2인 1조로 작업하도록 해야 한다”며 “현장을 지키고 감독하는 사람이 이 규칙을 반드시 지키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양 최고위원은 정 회장의 제안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양 최고위원은 “나 역시 28년간 노동자로 살았다”며 “근로자에게는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란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는 기업이 없어지지 않고 안전한 경영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처벌이 아닌, 회사의 산재 예방 활동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양 최고위원은 민주당 정책위원회에 ‘전문기술보유업체 인증제’ 도입 등 대안을 적극 개진하고 있다.
조미현/안대규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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