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별세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500억원 가까운 사재를 남김없이 사회에 기부했다. 타계 얼마 전 찾아간 정 회장의 거처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소박한 산꼭대기의 아파트였다.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역시 타계 50일 전, 500억원의 현금을 인공지능(AI) 연구에 써달라며 한 대학에 쾌척했다.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이미 여러 사회사업에 기부한 후였다. 이런 경우만 보면 우리나라 기부문화도 꽤 자리를 잡은 것 같지만 실상은 아쉬움이 따른다. 한 예로 기부금으로 조성된 미국 하버드대 기금은 약 50조원에 이르지만, 국내에선 모든 사립대의 기금을 합쳐도 8조원에 불과하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를 창업한 황필상 회장은 180억원 상당의 주식 지분을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140억원의 세금폭탄. 주식 기부는 증여에 해당된다는 이유였다. 기막힌 사례는 또 있다. 김구 선생의 후손들이 해외 한국학 진흥을 위해 42억원을 기부했는데 27억원의 세금을 부과받았다. 물론 기부를 악용한 탈세와 돈세탁을 막으려는 법의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융통성 없는 규제의 틀 속에서 자유로운 기부 문화가 정착될지 의문이다. 억울한 상황은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지만, 황 회장은 대법원 승소까지 거의 10년을 소송에 매달렸다. 칭찬하고 북돋아야 할 문화에 오히려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정부가 모두 보듬을 수는 없다. 아무리 촘촘한 복지그물을 마련해도 그늘은 생기기 마련이다.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그런 사각지대를 비추는 작은 촛불이자 이웃사랑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문화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해법이 없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짓궂은 문제(wicked problem)’에 직면해 있다. 양극화, 기후변화, 쓰레기 문제 등 제도만으로는 개선이 어려운 이런 문제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한 양보와 배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최근 코로나19로 배달이 급증하다 보니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인공지능이 보편화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일자리도 걱정이다. 나는 세금을 냈으니 이런 문제 해결은 국가의 몫이라고 여기면 그만일까. 늘 그래왔듯 나부터 솔선하는 공동체 의식이 우리 사회를 회복시키는 마중물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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