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 집단소송이 새 국면을 맞았다. 최근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디젤게이트 관련 마지막 쟁점 사안이던 온도에 따라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꺼지게 하는 소프트웨어의 위법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해당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수입차의 리콜과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벌어질 전망이다.
22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유럽 사법재판소(ECJ)는 최근 폭스바겐 차량에 설치된 소프트웨어 '써멀 윈도우'가 EU가 금지한 '임의조작장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써멀 윈도우는 주변 온도가 일정 수준으로 낮아지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끄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다. 제조사들이 이를 배출가스 인증 시험 조작에 악용했을 수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며 조작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2015년 디젤게이트 사건 당시 폭스바겐은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을 인정하면서도 써멀 윈도우에 대해서는 "엔진 노후화를 늦추고 막힘 증상을 방지하는 장치"라며 불법이 아니라고 항변해왔다.
써멀 윈도우는 독일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법적으로 제제할 근거가 부족한 탓에 아우디,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일부 제조사들은 디젤게이트 이후로도 자사 차량에 써멀 윈도우를 설치해왔다.
2018년 6월 독일 도로교통국은 메르세데스-벤츠에 C클래스 등 77만4000여대에 설치된 써멀 윈도우를 제거하라며 리콜을 명령했지만, 벤츠는 써멀 윈도우가 배출가스 조작과 연관됐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당국 결정에 반기를 든 바 있다.
이번 판결에서 ECJ는 "승인절차 과정에서 차량 배기 시스템 성능을 향상시키는 임의조작장치를 설치할 수 없다"며 "써멀 윈도우의 존재는 차랑 주행 시 위험을 일으킬 정도로 엔진 손상이 갑작스럽게 일어날 경우에 한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시해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써멀 윈도우'가 유럽연합이 금지한 '임의조작장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번 판결이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한-EU FTA’에 따라 유럽에서 인증받은 차량은 국내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해 수입한다. 이번 판결로 유럽 내에서 써멀 윈도우 설치가 위법한 것으로 판명난 만큼, 국내에서도 같은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수입차량들은 모두 리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된 환경부의 조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집단소송 2차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데일리메일은 "이번 판결이 폭스바겐,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등을 상대로 진행되는 집단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앞서 2015년 이후 국내에서는 약 5100명의 차주들이 폭스바겐을 대상으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디젤게이트 사건 당시 국내 소송을 이끌었던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도 이번 사안으로 소비자를 모아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써멀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수입차 차주를 중심으로 집단소송이 벌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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