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시는 성장주가 이끌었다. 투자자들은 당장 실적을 내야 하는 가치주보다 지금 실적이 없어도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성장주에 투자했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위축돼 기업 실적이 둔화된 탓이었다. 실적이 없는 시대, 미래의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백찬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코로나의 한 해였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줄었다”며 “매출과 이익이 안 나오다보니 실적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성장주 투자에 시가총액 순위도 변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연초 82위던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6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상위 6개 기업이 모두 신산업으로 재편된 것이다. 테슬라(TSLA)를 앞세운 전기차에 더해 반도체, 핀테크 기업도 시총 순위가 크게 상승했다.
23일 기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종목 중 시총 상위 5개 기업은 순위를 지켰다. 애플(AAPL) 마이크로소프트(MSFT) 아마존(AMZN) 알파벳(GOOG) 페이스북(FB)이다. 1위 애플(AAPL)은 시총 2조2250억달러(약 2450조원)로 삼성전자 시총의 5배에 달했다. 1년 새 2위 마이크로소프트(1조673억달러)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난해는 1050억달러였던 차이가 5520억달러까지 늘었다. 연초 7위였던 JP모건체이스(JPM)는 11위로 밀려났다.
다른 전기차 기업들도 테슬라를 따라갔다. 2014년 세워진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NIO)는 110년 역사의 제너럴모터스(GM)의 시총을 지난 11월 추월했다. 니오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지 2년 만이다. 니오의 시총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400억달러 머물었지만 연말에는 732억달러를 돌파했다. 607억달러 시총의 GM과 100억달러 넘게 격차를 벌렸다. 샤오펑(XPENG)과 리오토(LI) 역시 연초 대비 각각 208%, 198%씩 뛰며 전기차 랠리에 가세했다.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재편되리라는 기대감이 반영되며 전기차 기업들의 시총 순위도 크게 올랐다. 영국, 프랑스, 중국,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서 빠르게 회복한 중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판매가 늘어난 점도 호재였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월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14% 증가한 14만7000대를 기록했다”며 “이에 중국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테슬라와 중국전기차 벤처도 사상 최고가를 연일 경신 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시장의 확대에 맞춰 사업을 다각화한 전략이 빛을 봤다. 기존의 PC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이외에도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센터 수요에도 대응한 것이다. 엔비디아는 게임 플레이에 필요한 GPU가 본업이었지만 지난 9월 영국의 반도체 설계 업체인 ARM을 인수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기존에 영위하지 않았던 모바일 GPU나 서버 CPU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AMD도 지난 10월 자일링스를 인수하며 PC와 게임용 콘솔 칩을 넘어 데이터센터 칩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핀테크 기업의 강세는 언택트 수혜 덕분이다. 외부 활동이 줄어들며 전자결제가 늘어난 것이다. 페이팔은 올해 20.6% 늘어난 214억달러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언택트 수혜 기업이다보니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재임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성장 지표의 증가폭은 올해보다 감소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전자결제는 성장하는 분야”라며 “온라인 쇼핑 인구가 안정적으로 확대되면서 페이팔도 디지털 결제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줄 이은 대형 기업공개(IPO)도 한 몫 했다. 데이터보관 기업인 스노우플레이크, 공유 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IPO 직후 시총 100위권에 진입했다. 스노우플레이크(SNOW)는 시총 938억달러로 79위, 에어비앤비(ABNB)는 944억달러로 77위를 기록했다. 백찬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실적에 대한 희소성이 높다보니 새로 상장한 종목들에 관심이 쏠렸다"고 분석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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