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와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중대재해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 법제실에서조차 제대로 검토를 받지 않고 발의된 중대재해법이 조항마다 위헌적 요소로 가득해 '부실입법'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법안심사자료에 따르면 법사위 전문위원을 비롯해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중대재해법안에 대해 명확성, 책임주의, 포괄위임금지, 과잉금지, 평등, 3권분립 등 헌법의 기본 원칙들을 위배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 법인의 처벌 법규에 대해 법 집행기관인 법무부와 사법부를 대표하는 법원행정처 모두 현행 법 체계와 맞지 않다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현재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이탄희·박범계안을 비롯해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안 등 5개가 발의돼 있다. 통상 모든 법은 국회 법사위 심사를 거쳐야하는데,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등이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낼 경우 이를 수정하지 않으면 통과가 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민주당 의원안에 따르면 사망사고 발생시 사업주나 오너 등 경영책임자에 2년이상 유기징역과 5억원이상 벌금을 물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벌금형 상한을 두지 않으면 과잉금지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중대재해의 피해 정도를 구분하지 않고 사망 시 일률적으로 유기징역의 하한을 두는 등 그 법정형이 다른 고의범 등의 경우와 비교해 과도한 형사 책임 부여"라는 의견을 냈다. 책임에 비해 과도한 처벌은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해야한다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역시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검토해야한다”며 “법관의 재량에 의한 감경으로도 2억5000만원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벌금형이 판사의 재량을 침해할 정도로 과중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영세한 중소기업의 경우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의 벌금"이라며 "벌금 부담때문에 어려운 기업일수록 차라리 징역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2인 이상 사망했을 경우 사업주에 가중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책임주의 원칙 또는 평등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할 경우 5년이상의 징역형으로 가중처벌토록 한 것에 대해서도 “소홀하다는 의미가 모호하다”고 했다.
중대재해 발생시 법인에 전년도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토록 한 것이나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을 내리도록 한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은 "법인 또는 기관의 규모, 위반 행위의 성격, 피해의 정도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형의 하한을 높게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난 1월 산업안전보건법의 양벌규정이 기존 ‘1억원 이하’에서 ‘10억원 이하’로 상향 개정됐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산안법에서 벌금을 대폭 강화한 만큼 또다시 과중한 처벌을 할 유인이 낮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법원의 행정제재는 3권 분립의 원칙에 위반될 우려가 있다“고 했고, 법원행정처는 ”매출액을 벌금액 가중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선 그 연관성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법인 처벌 사실을 공개하는 방법을 대통령에 위임한 것에 대해선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어겼다고 법무부는 지적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만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선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법무부는 “의무 범위가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사실상 사고에 대한 결과 책임을 인정해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규가 명확하지 않고, 책임과 처벌이 맞지 않다는 의미다. 법사위 전문위원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부담하는 유해·위험방지의무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장 등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결과책임을 인정하게 될 우려가 있다"며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하는 문제가 있고, 기업 활동의 위축도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하청업체들이 오히려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사위 전문위원은 "영세 업체가 보다 큰 규모의 업체에 맡기거나 비영리 법인이 전문 업체에게 맡기는 경우 등 모든 도급, 임대, 용역, 위탁이 ‘위험의 외주화’ 성격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역시 "도급인 등에게 계약 내용·성격의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공동의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것도 명확성의 원칙,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도 "위험방지의무의 내용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이 있어 명확성원칙 위반 여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도급 및 위탁 관계에서의 공동 의무 부담 관련해서는 의무 부담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확장될 우려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상 사고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대해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 법안에 따르면 사업주를 비롯해 대표이사 및 이사. 사업상 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지위에 있는 모든 자를 경영책임자로 포함시켜 안전 및 보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법무부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사위 전문위원들도 "법인의 모든 이사를 경영책임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잉입법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이 이날 법사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심의에 들어가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재계를 대표해 입법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경총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경영책임자 개인을 법규의무 준수 및 처벌대상으로 규정한 과도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법정형으로 인해 산재예방 효과 증대보다는 소송증가에 따른 사회적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며 “대부분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중소기업만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등 부작용만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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