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오토바이만을 택배·배달 운송수단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관련 업계는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승용차·자전거 택배는 물론 유망 신산업인 드론배달까지 법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신산업 발전 저해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소위 ‘택배법’으로 불리는 생물법을 처리했다. 생물법은 화물차 이외에 최근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택배 운송수단의 법적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하지만 화물차, 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수단은 이 법상 운송수단에서 빠졌다.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면 화물차 택배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화물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결국 과거 ‘타다’처럼 승용차·자전거·전동 킥보드 등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사업체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의 경계선에 놓이게 됐다.
당장 쿠팡 이츠, 배민 커넥트 등은 법 근거 없는 사업체로 전락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혁신 사례로 꼽았던 드론택배 역시 추진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작년 타다와 택시업계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 양상이 택배업계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 법 근거없이 운영을 이어가던 타다는 “불법”이라는 택시업계의 반발 속 나온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서비스를 접었다.
관련 업계는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신산업 위축이 불보듯 뻔해졌다고 우려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타다 사태가 끝난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시민 불편과 신산업 위축 말고 남은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한다”며 “국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이 승용차·자전거·킥보드 등을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에서 제외한건, 의견수렴과 심의 절차를 생략한 일방처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 산업의 이익단체인 화물업계의 입김만을 반영해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승용차·자전거 등을 활용해 택배산업을 하고있는 쿠팡, 배달의민족, CJ 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관련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택배산업이 법밖으로 몰려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 영역으로 가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의 불확실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할 때 가장 우려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라며 "금지될 수도 있는 산업에 누가 투자를 하겠나"라고 말했다.
산업이 축소된다면 자연스레 상당수의 일자리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승용차?자전거?도보·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관련 종사자는 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유망 신산업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드론 택배 산업의 법적 근거 역시 없어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드론택배 활용 촉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며 사업 활성화 주문했다. 그럼에도 정작 정부여당은 반대로 경쟁력 저하 법안을 내놓은 셈이다. 이미 미국 아마존, 우버 등은 3~4년 내 드론택배를 본격 상용화하겠다고 밝혔고, 중국 역시 ‘DJI’ ‘이항’ 등 드론택배업체의 활성화가 빠른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이 과거 타다-택시 논쟁에서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표가 되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화물업계는 무제한 증차로 인한 운임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영업용 번호판을 통해 차량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영업을 위한 노란 번호판에는 택시면허 프리미엄과 유사한, 소위 '넘버값'이라고 하는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화물업계는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는 경우 여기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다. 민주당은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등 조직화된 화물노조의 이러한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난 6월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1차안에는 화물차, 오토바이 이외에도 드론을 운송수단으로 규정하고 승용차, 자전거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이후 화물노조의 반대로 화물차,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수단 모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고, 이것마저도 또다시 반대하자 결국 화물차, 이륜차만이 법으로 인정받게 됐다.
구산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피해를 고려해 이들이 신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신산업의 출연을 저해하는 방향의 법을 내놓는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태윤 경제학과 교수는 “해당 산업 노동자의 이동을 장려하는 방향이 돼야지 기존 산업 자체를 보호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산업의 변화는 어차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고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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