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교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소위 ‘택배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처리했다.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은 화물차 이외에 최근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택배 운송수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하지만 화물차 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수단은 이 법상 운송수단에서 빠졌다.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면 화물차 택배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화물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결국 과거 ‘타다’처럼 승용차,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사업체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의 경계선에 놓이게 됐다.
당장 쿠팡 이츠, 배민 커넥트 등은 법에 근거가 없는 사업체로 전락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혁신 사례로 꼽았던 드론택배 역시 추진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작년 타다와 택시업계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 양상이 택배업계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 법 경계에서 운영을 이어가던 타다는 “법 근거도 없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는 택시업계의 반발에 지속적으로 부딫혔다. 이후 정치권이 택시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자 타다는 서비스를 접었다.
업계는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신산업 위축이 불 보듯 뻔해졌다고 우려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타다 사태가 끝난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시민 불편과 신산업 위축 말고 남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국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존 화물업계 입김에 밀려…또 신산업 출현 막는 입법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1차 안에는 화물차, 오토바이 이외에도 드론을 운송수단으로 규정하고 승용차, 자전거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이후 화물노조의 반대로 화물차, 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수단은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화물노조가 이마저도 반대하자 결국 화물차, 이륜차만을 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과거 타다-택시 논쟁에서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표가 되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화물업계는 무제한 증차로 인한 운임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영업용 번호판을 통해 차량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영업을 위한 노란 번호판에는 택시면허 프리미엄과 비슷한 소위 ‘넘버값’이라고 하는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화물업계는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는 경우 넘버값이 급락하는 것을 우려했다. 민주당은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등 조직화된 화물노조의 이런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관련 업계는 해당 택배산업이 법 밖으로 몰려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 영역으로 가면서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불확실성”이라며 “금지될 수도 있는 산업에 누가 투자하겠나”라고 말했다.
산업이 축소되면 상당수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승용차·자전거·도보·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택배종사자는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유망 신산업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드론택배산업의 법적 근거 역시 없어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드론택배 활용 촉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며 사업 활성화를 주문했다. 그럼에도 정작 정부·여당은 신산업 성장을 막는 법안을 내놓은 셈이다. 미국 아마존, 우버 등은 3~4년 내 드론택배를 본격 상용화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에서도 DJI, 이항 등 드론택배 업체가 급성장하고 있다.
기존 종사자들에 대한 피해만 고려해 신산업 출현 자체를 법으로 막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산업 노동자의 신산업 이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기존 산업 자체를 무작정 보호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산업의 변화는 어차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고 경제적 손실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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