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0시를 기점으로 시행한 '연말연시 특별 방역대책'으로 전국 모든 식당에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다. 최근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는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 기세를 꺾기 위한 조치다. 5인 이상 모임 금지는 수도권에선 하루 앞선 23일부터 시행됐다.
방역당국의 다급함과 달리 실제로는 별다른 효과를 못 내는 '전시성 대책'에 그치는 분위기다. 서울시내 식당 점심시간은 직장인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외식하러 나온 인파로 여전히 붐볐다. 오히려 현장 곳곳에선 성탄절을 사흘 앞두고 급하게 발표된 대책에 혼란을 빚었다.
식당 주인들은 "5인 이상 손님은 나눠 앉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고,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일선에서 단속하는 구청조차 "사적 모임을 어떻게 다 확인할 수 있나"라고 호소했다.
'지침'과 '현장'은 다르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안팎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방역 대책이 현실성과 실효성을 못 냈다며 '졸속 대책'과 '탁상 행정'이란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다만 이곳이 생기를 잃은 시점은 이달 중순부터다. 가게 주인들은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직장인들이 대거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손님이 줄었다고 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만들어낸 풍경은 아니란 것.
5인 모임 금지 조치가 별다른 효과를 못 낸다는 것은 인근에 위치한 IFC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인은 물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가족, 연인과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인파로 가득찼다.
대부분 식당이 만석이었다. 열댓명씩 줄을 서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에 맞춰 3~4명씩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사람이 몰리면서 식당 내부에는 거리두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식당 바깥 길게 늘어진 대기줄에도 거리두기 조치는 없었다.
여럿이 사용하는 푸드코트 또한 맞닿아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식사해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연말연시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가 무색했다.
5명 이상의 일행끼리 3명씩 또는 4명씩 나눠서 앉는 일명 '쪼개기' 편법은 현장에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식당에선 5인 이상 모인 모습을 보기 어려웠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일행이 바로 합류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서로를 사내 직급으로 부르던 이들은 "옆에 있었는데 맛있게 먹더라. 빨리 (회사에) 들어가자"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의도역 인근에서 5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모씨(50)는 "5인 이상 손님은 알아서 나눠서 들어온다. 따로 들어와 앉고 계산도 따로 하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느냐"라면서 "나갈 적에 인사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일행이구나 하는 경우도 있다. 인원수 제한이 실효성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른바 쪼개기 꼼수가 단속 대상이란 걸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식당 주인 김모씨(53)는 "5명 이상 손님은 테이블을 나눠 앉도록 하고 있다. 이게 단속 대상인 줄은 몰랐다"며 "따로 지침 온 것도 없다. 5인 이상 안 받으려 노력하겠지만 사실 장사하는 입장에서 나가라고 하는 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1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이모씨(51)도 "5인 이상 손님이 오시면 안쪽 테이블과 바깥쪽 테이블에 나눠 앉으라고 한다. 이걸 단속한다니 말도 안 된다"면서 "일행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한 손님이 나가실 때 다른 테이블과 같이 계산해달라 해서 그때 일행인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5인 이상 모였다고) 나가달라고 하면 기분 나쁘다고 안 오겠다는 손님도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손님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현장에서 지켜지기 힘든 '탁상 행정'이란 지적에는 방역 수칙 준수 여부를 일선에서 단속하는 구청에서조차 인정했다.
서울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식당은 종전의 테이블 간 거리 유지에서 달라진 게 없다. 현실적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잘 지켜지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식당 입구에서 입장하는 사람을 다 막고 확인해야 한다는 건데, 그럴 권한이 없다. 현장에서는 일행과 가족 여부도 사실상 구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도 "단속보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살피는 수준으로 계도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사적 모임이기에 사실 기준이 애매하고 일일이 다 체크할 수 없다. 단속을 하라고 지침은 내려왔지만 현장에선 불가피한 마찰이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자체조차 단속이 어렵다고 보지만 책임은 자영업자에게 전가되는 꼴이다. 정부는 앞서 5인 모임 금지 조치 위반시 운영자에게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치료비 등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은 "지원금은 고사하고 그냥 죽으라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아예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조치를 취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식당 주인 김씨(53)는 "구분하기 힘든 대책을 내놓고 처벌하겠다는 건 무리한 요구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죽어나는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까지 책임지란 것이냐"라고 했다.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50)는 "질질 끌어봤자 답이 안 보인다. 아예 3단계를 시행해서 다 같이 힘 모아 빨리 이 사태를 끝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같은 불만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완벽하게 단속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책임을 묻는 것 또한 과한 처사일 수 있다고 본다"면서 "과태료 부과는 고의성과 반복 여부 등을 감안한 감경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김모씨(26)는 "오늘 케이크 사러 잠시 나왔는데 식당가에 사람들이 줄 선 것 보고 놀랐다. 5인 이상 집합금지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며 "강하게 막지 않으면 지키는 사람만 지키고 안 지키는 사람은 계속 안 지킬 것"이라고 했다.
다중이용시설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최모씨(60) 또한 "4인이든 6인이든 방역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듯한데 하는 시늉은 해야 하니, 정부는 손 놓고 뭐하느냐는 소리 면하려고 시행한 대책 같다"며 "집단감염 터져 나오는 교회는 20인 이상도 허용하면서 5인 미만으로 있으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인 추모씨(29) 역시 "실효성 없다고 본다. 무슨 대책이 연말 다 되어서 나오나"라면서 "확진자가 1000명대로 진입한 지 한참인데 이제야 식당 예약을 취소하라고 통보하는 식이다. 심지어 세부 지침도 계속 바뀌는데 무슨 대책이 이렇게 안일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연말연시 특별 방역대책'이 늦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이달 13일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고, 16일엔 3단계 격상 기준을 충족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성탄절을 불과 사흘 앞두고 수도권 집중 방역대책을 내놨다. 이마저도 세부 지침이 마련되지 않아 혼란을 빚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거리두기 효과라는 게 시차가 있다. 이미 강력한 조치를 내고 반전을 기대했는데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며 통제불가 상황까지 이를 수 있겠다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세부 지침이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적절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부족한 점을 줄여나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방역 전문가는 변칙 성격보다는 아닌 중장기적 방역 대책을 세워 꾸준히 지키는 것이 방역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 조치는 실효성과 명확한 근거가 있고, 시민들이 납득 가능할 때 효과가 높다. 이러한 면에서 5인 모임 금지 조치는 한계가 많은 대책"이라며 "이번 조치는 불과 며칠 전까지 언급이 없다가 기습적으로 내놓은 방침이라 예측가능성이 낮았다. 방역 효과는 크지 않은데 피로감은 높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그는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중장기적 목표와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마스터플랜 부재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 이에 맞춰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방역 효과를 높이는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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