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에 돈 풀라던 금융당국…집값 잡으라는 文 지시에 '돌변'

입력 2020-12-25 17:12   수정 2020-12-2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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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들에 돈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마당에 신용대출을 억제하면 (논리적으로) 상충된다.”

지난 8월 1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신용대출 증가세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코로나19가 해소될 때까진 (유동성 공급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극복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을 통해 시장에 충분히 공급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며칠 뒤 자금을 아낌없이 풀겠다는 기조가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위해 금융위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8월 18일 ‘신용대출로 부동산대책 효과를 하락시키는 행위에 대한 조치’를 지시했다. 주택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으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살 수 없도록 신용대출을 억제하라는 얘기다. 금융위는 처리현황으로 ‘추진계획 마련 중’이라고 표현했다.

득달같이 오르는 집값 탓에 금융 정책은 완전히 갈피를 잃었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지 한 달 만에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모았다. 당장 10월부터 은행권 신용대출 한도를 매월 2조원대로 제한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코로나19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돈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압박이 집 살 돈을 빌리지 못하도록 은행권의 돈줄을 죄라는 특명으로 바뀌었다.

은행들은 대출 총량 규제 초반에 고소득 고신용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억원씩 돈을 빌리는 전문직이 문제라며 대출 한도를 2억원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다. 일반인은 별 영향이 없을 것처럼 소개했다. 하지만 돈 잘 버는 사람들만 막아서는 대출 증가세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무차별적으로 깎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차주가 최대 0.4%포인트의 이자를 더 내야 했다. 그런데도 소용없었다. 지난달 5대 은행에서만 4조8495억원의 신용대출이 빠져나갔고 결국 대형 은행들은 아예 대출의 문을 닫아버리기에 이르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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