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신용대출 증가세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코로나19가 해소될 때까진 (유동성 공급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극복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을 통해 시장에 충분히 공급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며칠 뒤 자금을 아낌없이 풀겠다는 기조가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위해 금융위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8월 18일 ‘신용대출로 부동산대책 효과를 하락시키는 행위에 대한 조치’를 지시했다. 주택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으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살 수 없도록 신용대출을 억제하라는 얘기다. 금융위는 처리현황으로 ‘추진계획 마련 중’이라고 표현했다.
득달같이 오르는 집값 탓에 금융 정책은 완전히 갈피를 잃었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지 한 달 만에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모았다. 당장 10월부터 은행권 신용대출 한도를 매월 2조원대로 제한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코로나19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돈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압박이 집 살 돈을 빌리지 못하도록 은행권의 돈줄을 죄라는 특명으로 바뀌었다.
은행들은 대출 총량 규제 초반에 고소득 고신용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억원씩 돈을 빌리는 전문직이 문제라며 대출 한도를 2억원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다. 일반인은 별 영향이 없을 것처럼 소개했다. 하지만 돈 잘 버는 사람들만 막아서는 대출 증가세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무차별적으로 깎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차주가 최대 0.4%포인트의 이자를 더 내야 했다. 그런데도 소용없었다. 지난달 5대 은행에서만 4조8495억원의 신용대출이 빠져나갔고 결국 대형 은행들은 아예 대출의 문을 닫아버리기에 이르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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