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코로나 시대, 국가의 존재 이유

입력 2020-12-27 18:39   수정 2020-12-28 00:16

식당을 예약하는 대신 노트북을 켜고 각자의 잔에 음료를 담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랜선 파티’의 시대다. 송년 모임도 랜선 파티가 대세다. 참석자들에게 물어봤다. 백신을 맞겠느냐고.

남들 먼저 맞는 것 보고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는 신중파, 절대로 안 맞는다는 불신파가 다수였다. 10년 소요되는 개발 시간을 1년으로 단축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어떻게 믿고 맞을 수 있느냐는 불신파, 다른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후 판단하겠다는 신중파 속에 60% 정도가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 생기니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견해까지 등장했다. 참석자 중 백신을 먼저 맞겠다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나마 직업상 해외출장을 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확보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방역 현장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 감염자, 고위험군 시민들에게 백신은 칠흑 같은 어둠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불빛 같은 것이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지금까지 선전했음에도 정작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져 국민은 이번 겨울을 백신 없이 지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극도의 혼란 속에 허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검사-정밀추적-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체로 하는 한국의 방역 체계는 민주주의 국가가 미증유의 감염병에 대처하는 모범사례로 홍보됐다. 그러나 방역만으로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승리로 종결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했다. 10년의 시간을 1년으로 압축한 백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요인에 대한 우려로 백신 조기 확보에 미적거렸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거기에는 어떤 비용도 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코로나19의 공포가 전 세계를 덮친 지난 초봄.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으면 날씨가 쌀쌀해지는 북반구의 겨울이 시작될 때쯤엔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예측됐다. 우려했던 ‘제2의 정점(The second peak)’ 시나리오대로 상황은 이미 전개되고 있다. 변종에 대한 우려와 예측도 있었다.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이 이럴진대, 정부는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에만 집착해 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이번주가 최대 고비”라는 말만 반복했다.

전쟁에 임하는 장수는 당장 눈앞의 전투만 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궁극적으로 승리로 이끌지를 골몰한다. 초반 전투에서 이겼다고 전쟁에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음은 동서고금의 전쟁사가 보여주고 있다.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초반 전투에서 밀리더라도 결국 전쟁에 승리한 경우에는 늘 역전 시나리오가 있었다. K방역은 전투수칙일 뿐, 전쟁을 끝낼 역전의 병기가 될 수는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가 지구를 뒤덮은 2020년이 지나가지만, 그래도 일상은 계속됐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공간에서의 만남과 교류는 어려워졌지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교류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날마다 시장에 가서 신선한 채소와 계란을 직접 고르지는 못하지만, 매일 이른 아침 주문한 채소와 계란이 집 문 앞에 배달되고 있다. 송년 파티는 랜선 파티로 대체되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이동해야 비로소 가능했던 국제회의는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서비스 공급자들이 소비자와의 계약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핑계 대지 않는다. 계약 이행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라는 서비스 공급자는 그들에게 권력을 준 국민과의 계약을 지키고 있는지,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는 전 세계 시민들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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