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10년만에 다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배경은 산업은행이 대주주 마힌드라의 지분을 놓고 마힌드라 측과 협상을 이어가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회생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경우 대주주 지분 감자 조치, 의결권 박탈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4일 구조조정 업계에 따르면 당초 채권자인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대해 회생을 신청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실제로 산업은행 측은 쌍용차 회생 신청을 대비해 의견 조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막상 회생 신청인은 채무자인 쌍용차였다. 신청 내용도 자율 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이다. ARS란 회생 개시 결정을 내리기 전 채권자와 채무자 간에 법원의 감독 하에 자율적으로 채무 조정 등을 협상하는 절차다.
이는 산업은행이 본격적으로 회생이 개시될 경우 '대주주 지분 감자' 등을 통해 마힌드라 지분이 공중분해되는 경우를 배수의 진으로 두고 마힌드라 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이같은 전략을 짠 것이다. 거기다 쌍용차는 현재 자본잠식 상태다. 3분기 연결기준 자본잠식률이 86.9%다. 자본잠식 기업은 추후 회생절차를 시작하면 법원에 제출된 회생계획안에 대해 주주의 의결권은 박탈된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그냥 협상을 하는 것보다 법원의 테두리 안에서 마힌드라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또 산업은행 입장에선 정식 회생절차를 신청할 경우 쌍용차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법원에 빼앗기고 만약 곧바로 파산으로 가게 되면 향후 불거질 정부책임론을 의식해 ARS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차와 산업은행은 ARS를 통해 정식 회생절차 개시가 보류되는 기간 동안 채무 만기연장과 쌍용차 자구책 방안, 마힌드라 지분 감자 여부 등 구조조정 합의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앞서 쌍용차 원매자로 인수의사를 밝혔던 미국 자동차 유통사 HAAH오토모티브와의 신규 투자 협상도 이 기간 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원만한 합의가 나오면 회생신청을 취하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RS의 경우 현재 시중에 알려진 3개월 기한은 실제와 다르다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2018년 첫 ARS가 적용된 사례인 다이나맥 회생 절차 당시 3개월 간 회생 개시 결정이 보류된 적이 있는데, 그 사례가 원칙인 것처럼 알려진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ARS는 법원의 재량권이 적용되는 절차로, 법적으로 따로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있다"며 "1개월마다 회생 개시 보류 결정을 내리며 채권자와 채무자 간 협상을 감독해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즉 쌍용차, 산업은행, 마힌드라, HAAH 등 다자 간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갈 기한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단축될 수도, 늘어날 수도 있는 만큼 쌍용차와 산업은행은 '벼랑 끝 전술'로 협상을 최대한 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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