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1' 쌍용차가 풀어야 할 숙제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입력 2020-12-29 06:00  


법조계 안팎에선 2~3개월 전부터 쌍용자동차가 회생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쌍용차가 마힌드라(쌍용차 대주주)의 뒤를 이을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이리저리 협상을 해봐도 마땅치 않으니 법원 문까지 두드리게 됐다는 겁니다.

쌍용차의 연간 판매량은 2016년 이후 해마다 줄고 있고, 경영실적도 2017년 1분기부터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 상반기 마힌드라가 자금지원을 끊는 ‘손절’의 움직임을 보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장 상황도 나빠지니 쌍용차의 경영은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다만 법원은 내년 2월 28일까지 ARS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며 쌍용차에게 시간을 줬습니다. 여기서 시간이란 ‘알아서 새 주인 찾을 시간’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지난 21일 쌍용차가 회생절차를 신청하긴 했지만 법원은 일단 개시를 보류하고 구조조정 협의 등을 지원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기간 안에 협상이 이뤄지면 회생신청은 없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협상이 이뤄지지 못하면 다시 회생절차가 시작됩니다.




그럼 앞으로 남은 시간 쌍용차는 어떤 숙제를 풀어야 할까요? 물론 법원의 판단 아래 ARS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재판부는 기간을 늘리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쌍용차가 회생절차를 피하고 싶다면 법원이 준 시간내에 △이해관계자들과 합의 하에 새 주인을 찾고 △계속기업가치를 증명해야 하며 △구조조정 문제도 검토해야 합니다.

앞으로 두 달여간의 시간을 별다른 성과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쌍용차에게도 채권자들에게도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지체될뿐더러 자칫하면 회생이 아니라 파산절차를 시작해야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새 주인 찾기
현재 쌍용차의 차기 주인으로 거론되는 회사는 미국의 자동차 유통업체인 HAAH라는 회사입니다. 지분 매각 협상을 벌이고는 있는데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자동차 업계가 워낙 어려울뿐만 아니라 M&A(인수합병) 시장도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앞서 HAAH는 쌍용차에 3000억원 가량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의향’이 실제 투자로 이어질지, HAAH가 쌍용차의 무엇을 보고 수천억원대 돈을 투자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이 핵심입니다. HAAH의 자금력과 운영능력 등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HAAH와의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다면 대안도 마땅치 않습니다. 다시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고 채권단과의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하는데 법원이 내준 두 달안에 이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두 달의 ARS 기간이 끝나고 회생절차가 본격적으로 개시되더라도 비슷합니다. 쌍용차 지원과 관련해 정부나 산업은행의 반응도 미온적이어서 M&A에서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쌍용차는 사실상 퇴출 기로에 서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2. ‘살아날 수 있음’ 증명하기
쌍용차는 계속기업가치도 증명해야 합니다. 애초에 파산이 아니라 회생절차를 시작하려면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높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쌍용차가 영업을 계속 이어갈 때 얻는 가치가 기업을 청산하는 것보다 더 높다는 것이 증명돼야 회생절차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파산과 회생은 완전히 결이 다른 도산절차입니다. 파산은 법원이 기업의 재산을 환가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준 후 그 법인이 소멸되는 식으로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한마디로 청산입니다.

회생은 그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 절차입니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은 채권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인들과 채무자 사이의 법률 관계 조정을 도와주고 관리인이 작성해 온 회생계획안을 검토한 뒤 인가 여부를 결정합니다. 즉 법원이 도와줬을 때 다시 살아날 체력이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쌍용차의 자산은 1조 6906억원이고 부채는 1조 5894억원입니다. 쌍용차가 계속기업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재판부에서 쌍용차를 살려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면 최악의 경우 파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3. 구조조정 합의하기
구조조정 문제도 쌍용차가 넘어야 하는 산 중 하나입니다. 업계 안팎에선 구조조정 없이는 사실상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채권단이 요구하는 인력 축소나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쌍용차 노조는 이미 지난해 9월 학자금 및 의료비 지원 등의 복지 중단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3일 쌍용차 복수노조 중 기업노조는 “총고용이 보장된 회생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쌍용차와 협력 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가족은 약 6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쌍용차가 무너지면 이들의 생계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뾰족한 수가 없다면 차라리 회생절차를 빨리 개시하는 게 낫다’거나 ‘사전회생계획안을 제출하고 속전속결로 절차를 마무리 짓는 소위 P플랜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회생법원은 쌍용차가 계속해서 영업을 이어가고 자동차 산업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의 사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SUV 시장을 개척해 온 쌍용차가 11년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쌍용차의 경영난이 어떤 방법으로 타개될 지 주목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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