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 대충 짐작이 가긴 한다. 헨리 조지를 다시 꺼낸 걸로 봐선, 토지공개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토지에서 생겨나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므로 지대에 100% 과세해 전부 환수하자는 게 헨리 조지의 주장이다. 유씨 역시 “헨리 조지가 제안한 토지 단일세의 취지를 우리나라의 조건에 맞게 실행할 방안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세금 수준으론 부족하니,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증세를 하자는 걸로 들린다.
유씨의 사고 근저에는 자본주의, 시장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성이 있다. 땅도 재화의 일종으로 사고파는 과정에서 이윤을 낼 수도 있고, 반대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가치 있는 자산에 투자해 부를 축적하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런 경제 행위다. 유씨뿐 아니라 이 정부 핵심 인사들 상당수가 서울 강남에 집을 보유해 자산가가 된 것도 그 가치에 투자한 결과 아닌가. 유씨는 스스로 이런 정상적인 경제 행위 자체를 부정하며 왜곡하고 있다.
물론 집 거래가 과도한 부(富)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만큼 박탈감에 빠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오히려 집값이 폭등한 데는 시장 논리를 거스르려 한 정부 탓이 크다. 그럼에도 아직도 찍어누르기 강도가 약해서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새해는 이런 오만과 아집이 사라지고 상식과 보편이 통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소득주도성장이나 공정경제 같은 정책기조의 전환을 바라진 않겠다. 어차피 임기 마지막 날까지 포기할 정부가 아니므로…. 다만 ‘시장은 탐욕스럽고 정부는 선량하며 전지전능하다’는 오류만큼은 바로잡혔으면 좋겠다. 부동산 폭등, 고용 악화, 소득격차 확대 등 시장의 각종 비효율은 시장 기능 자체의 실패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과도한 시장개입에 따른 역효과, 즉 정부 실패 탓이 크다.
이 정부의 특장기인 ‘돈 풀기’도 원칙을 정해놓고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재정준칙이란 게 있었다면 6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은 펑펑 낭비하면서 겨우 수십억원의 선입금을 떼일 걱정에 국민 목숨이 달린 백신 구매를 미루는 어리석은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의 비정상도 정상으로 돌려놨으면 한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해 정책이 뒤틀리는 행태, 대통령의 한마디에 뚝딱 정책이 만들어지고,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도 생략된 채 일방 추진되는 행태…. “내가 하는 건 다 옳다”는 자만은 이제 그만 버릴 때도 됐다.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임기 후반기에는 조급증을 버리고 정책의 디테일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그러려면 인사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정권 초반이야 정책 방향을 정해 밀어붙여야 하니, 철학과 이념으로 무장된 인사를 기용하는 게 맞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집권 후반기엔 정책에 디테일을 입힐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문 관료도 후보가 될 수 있지만, 똑똑한 관료는 개혁의 방해물이라는 생각이 참모들 머리에 뿌리박힌 이 정부에선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실정과 백신 파동, 윤석열·추미애 갈등 등으로 악화된 민심에 쫓겨 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조급증에 빠져 실무형이 아닌 이념형 인사를 또 기용한다면 1년 남짓 남은 이 정부에 거는 마지막 기대도 접는 편이 낫겠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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