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한 명 이상 사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두 명 이상 나타나거나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 경영 책임자, 공무원 등을 광범위하게 형사 처벌하는 내용의 법입니다. 형벌이 과하고 법조문이 모호해 위헌 소지가 많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박주민·박범계 민주당, 임이자 국민의힘,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과 정부 수정안을 논의하고 있는데요. 공교롭게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총 757명의 재소자가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중대재해법을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봤습니다.
중대재해법에는 사고로 인한 근로자 사망이나 부상뿐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질병 발생도 중대재해로 봅니다. 박주민 의원안에 따르면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했습니다. 질병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감염도 이 조항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에는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공기관 등의 장(長)도 포함됩니다.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 사례에 법안을 적용하면 법무부 장관은 최종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수감자에게 확진자 발견 전까지 마스크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접촉자 관리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며 "구치소 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추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 의원의 말대로라면 추 장관은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상 처벌이 가능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망 외의 중대재해이기 때문에 3년 이하의 유기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주무부처 장관이 코로나19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은 지적받아 마땅하지만, 장관에게 감염의 책임을 물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은 지나칩니다. 장관이 고의를 가지고 코로나19를 확산시킨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형법의 기본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를 일부러 내는 기업인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고 예방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엄벌 일변도의 정책이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삼성전자에서 28년간 일반 근로자로 일하다가 임원까지 오른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근로자에게는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란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민주당에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정부 의견이 받아들여지면 부처 장관 등은 처벌 대상에서 빠집니다. 정부는 "이 법이 형식적으로 적용됨으로써 발생하는 폐단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실질적으로 관리책임을 부담시키기 어려운 경우까지 정부기관장에게 무분별한 형사책임이 부과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인의 대표나 오너의 경우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중대재해법이 형식적으로 적용돼 발생하는 폐단과 무분별한 형사책임 부과되는 부작용이 고려될 수는 없는 걸까요? 더구나 중대재해법이 애초 발의된 주된 이유는 구의역 김 군 사고(서울시·SH),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용균 씨 사고(충청남도·한국서부발전) 등 지자체와 공기업이 연루된 사건 때문인데 말입니다.
법사위는 이르면 29일 제출된 정부안을 토대로 중대재해법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입니다. 민주당 소속인 백혜련 법사위 여당 간사는 정부안에 대해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나름 법률적으로 제기됐던 부분들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국회 안팎에서는 정부가 제안한 대로 법안이 제정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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