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서 헬스트레이너로 근무 중인 초보 아빠 김모씨(32)는 지난달 아들의 백일을 기념해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매달 삼성전자와 애플 주식을 매수할 계획이다. 아이의 대학 등록금과 독립 자금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직장인 고모씨(32)는 여유자금과 돌잔치 등을 통해 마련한 1000만원으로 23개월 된 아들 앞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다. 현재까지 수익률은 40%에 달한다. 그는 “매달 20만원어치 삼성전자 주식을 아이 이름으로 사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할머니도 가세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한모씨(61)는 두 살 난 손자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최근 주식 계좌를 새로 개설하고 300만원을 넣어줬다. 한씨는 “사교육비를 줄여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며 “앞으로는 용돈 대신 주식을 선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들은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줄 수 있는 우량 종목을 사들였다. 삼성전자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1순위 주식에 줄곧 이름을 올렸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미성년자 계좌에 가장 많이 담긴 주식으로 꼽혔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상위 종목들은 바뀌고 있다. 자녀 계좌로 SK하이닉스 셀트리온 한국전력에 주로 투자하던 이들이 올해는 네이버 카카오 현대차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해외주식 투자 성향도 변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를 통해 미성년자 계좌를 새롭게 만든 고객들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테슬라였다. 애플 알파벳(구글) 아마존 벅셔해서웨이가 뒤를 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손해보험과 베트남 1위 손해보험사 바오베트남 등이 상위 5개 종목에 올라 있었다.
증여를 위해 자녀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준 부모도 있었다. 올초 씨젠으로 높은 수익을 거둔 의료업계 종사자 박모씨(38)는 주식 투자를 통해 증여세 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다섯 살 딸 이름으로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10년간 2000만원 한도로 증여세가 면제된다. 예를 들어 한 살에 2000만원어치의 주식을 사주고 10년 뒤인 11세에 다시 2000만원어치의 주식을 사줄 경우 4000만원에 대한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일부 부모는 국내주식뿐만 아니라 미국주식 상장지수펀드(ETF), 펀드 등 다양한 자산에 유연하게 운용, 대처할 수 있는 랩어카운트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시장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가 판매한 지점형(PB형) 랩 잔액이 올해 급증한 것도 이 같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경제/박재원 기자 hanky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