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전설' 피에르 가르뎅 별세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명품 패션업계에서 최초로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크게 벌여 패션산업을 확장한 선구자로 꼽힌다.

29일 프랑스 예술아카데미는 피에르 가르뎅이 프랑스 파리 인근 도시인 뇌이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생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무대 의상 디자인과 건축에 관심을 보였고, 이후 가족과 프랑스로 건너가 14세 나이에 수습생으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1947년부터는 크리스찬디올에서 3년간 일하며 허리선이 잘록한 재킷에 무릎을 덮는 풍성한 스커트 실루엣으로 상징되는 ‘뉴룩’ 출시를 도왔다. 이후 함께 일하자는 디올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립해 1950년 28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독자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그는 1954년 풍성한 밑단이 특징인 ‘버블 드레스’를 선보여 유명세를 탔다. 1960년대엔 각종 ‘스페이스 패션’을 선보여 세계적인 유행을 주도했다. 당시 미국과 구소련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 분위기에 사회 화두가 된 우주를 모티브로 옷을 디자인했다. 에바 페론, 재클린 케네디 등 각국 대통령 부인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브리지트 바르도 등 유명 배우들이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피에르 가르뎅은 패션산업에서 각종 ‘최초’ 타이틀을 단 인물이다. 1959년 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이너 최초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같은 해에 쿠튀르만 취급하던 파리 프렝탕백화점에 기성복 라인을 처음으로 들였다가 프랑스 패션협회 격인 파리의상조합에서 퇴출당한 뒤 복귀했다. 1979년엔 서방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86년엔 구소련에 기성복 라인을 선보였고, 1991년엔 붉은광장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아카데미프랑세즈(프랑스 한림원)에 최초로 디자이너 자격으로 입회했다.

그는 노련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로열티를 받고 브랜드명을 빌려주는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키웠다. 한국 시장에도 최초의 라이선스 브랜드로 1979년 처음 들어왔다. 그러나 이후 브랜드명이 값싼 양말, 펜부터 생수 등 패션과 별 관련이 없는 각종 제품에 붙어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차세대 디자이너 육성에도 힘썼다. 크리스찬디올 수석디자이너를 지낸 장 폴 고티에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가 피에르 가르뎅이었다. 18세인 고티에의 스케치를 보고 견습생으로 고용했다. 지난 2월에도 자신의 보조로 일하는 신예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