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숨지기 직전 "문제될 소지 있는 문자 했다"

입력 2020-12-30 14:58   수정 2020-12-30 15:13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7월 숨지기 직전 당시 성추행 혐의 피소를 인지한 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행동이 문제의 소지가 있었음을 자인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북부지검은 30일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이 수사기관 등을 통해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사기관 관계자 등 피고발인들이 피소사실을 유출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이날 모두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4차장 검사, 유현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를 공무상 비밀누설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도 같은 달 경찰청장, 청와대 관계자 등을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경찰 및 청와대 관계자들이 외부로 피소 사실 관련 정보를 유출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고소 전날인 지난 7월 7일 여성단체 관계자 A씨에게 연락해 박 전 시장 고소 예정 사실을 알리며 피해자에 대한 여성단체의 지원을 요청했다. A씨는 다른 여성단체 대표 B씨와 수차례 통화했다. B씨는 다음날 같은 단체 공동대표인 C씨와 통화했고, C씨는 여당 국회의원과 통화했다. 이 의원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 의원은 통화 직후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해 '박 시장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는 취지로 물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 특보는 7월 8일 오후 박 전 시장을 만나 “시장님과 관련해 불미스럽거나 안 좋은 얘기가 돈다는 데 아시는 것이 있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박 전 시장은 “없다”고 재차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시간 후 박 전 시장은 임 특보를 불러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내용으로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4월 사건’은 서울시장 비서실 전 직원인 D씨가 지난 4월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건이다.

박 전 시장은 7월 9일 오전 서울시장 공관에 고한석 당시 비서실장을 불러 “피해자가 여성단체와 함께 뭘 하려는 것 같으니 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할 예정”이라며 “그쪽에서 고발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은 비서실장이 떠나고 오전 11시께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긴 채 공관을 나왔다. 오후 1시께에는 임 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15분쯤 뒤 비서실장과의 통화에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하고 2시간 뒤 휴대폰 신호가 끊겼다. 그는 다음날인 10일 자정께 서울 종로구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박 전 시장이 임 특보를 통해 최초로 정보를 취득한 시점은 피해자의 고소장 접수 이전이고, 박 전 시장과 임 특보는 고소 이후에도 고소 여부와 구체적 고소내용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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