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그림자처럼
산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 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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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짧은 자장가 한 편으로 이렇게 사람을 울리다니! 정호승 시인은 88세 된 어머니가 잠든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보리새우처럼 둥글게 누워 자는 어머니, 어린 날 그를 재우려고 자장가를 불러주던 어머니….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잘 자라 우리 아가’로 시작하지만 이 시에서는 ‘아가’가 ‘엄마’로 바뀌었다. ‘잘 자라 우리 엄마’를 세 번 반복하면서 할미꽃 같고, 산그림자 같고, 예쁜 아기 같은 모습을 따스하게 그려냈다.
정호승 시인은 효심이 깊은 사람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자주 뵈려고 작업실을 부모님 댁으로 옮겨 놓고 매일 출퇴근하듯 글을 썼다.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서문에는 ‘이 시집을 늙으신 어머님께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올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2019년 봄에 돌아가셨다. 그때 시인은 어머니 영전에 이 시를 바치고 입관할 때 읽어드렸다. 이 시를 노래로 부른 가수 안치환은 “저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빈소에 틀어놓고 싶은 노래”라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가 가계부로 쓰는 공책에 시를 쓰신 걸 봤는데, 그때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어떻게 시의 본질을 그리 꿰뚫고 계셨는지 놀랐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한테 있던 시의 마음이 저한테 와서 제 가슴 속에 시가 고이는 게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시는 모유 같은 거예요. 어머니가 모유를 주지 않으면 아기가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죠.”
그에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이자 ‘사랑의 본질을 다 알고 말없이 실천하는 무조건적 헌신의 샘물’이다. 그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활과 화살에 비유하곤 한다.
“화살은 활이 많이 휠수록 멀리 날아갑니다. 어머니의 허리가 휠수록 자식은 그만큼 멀리 나아가지요. 화살이 멀리 날아갈수록 그 화살을 날려 보낸 활은 더욱 팽팽하게 휩니다. 활은 휘어질수록 고통이 심하지만 오직 화살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고통을 참고 이겨냅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어머니의 합죽한 미소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도 그동안 살면서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 죄스런 마음을 담아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시에 그려진 어머니의 등은 활처럼 둥글다.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도 둥글고,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도 둥글다. 시인은 그 둥근 곡선의 손길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따뜻한 어머니의 젖가슴과 그 사랑의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유의 달큰한 향기까지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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