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제조업의 중요성입니다. 강한 제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경쟁력입니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은 2021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한국이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도 선방할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한 제조업 기반 덕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유통 항공 관광 등 서비스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이 기대 이상으로 분전한 덕분에 다른 국가에 비해 충격을 덜 받았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을 향해선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기업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여당이 조급증을 버리고 기업인들과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전 회장은 2018년 7월 포스코 회장에서 물러난 뒤 저서 집필과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의 개인집무실에서 권 전 회장을 이심기 산업부장이 만났다.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비교적 선방했다고 봅니다. 기업들이 대처를 잘한 결과입니다. 정부도 노력했지만 보조적인 역할이었습니다.”
▷제조업이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유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한국 경제가 팬데믹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제조업 덕분입니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와 진단키트가 부족해 고생했지만 중소기업들이 금방 대량생산을 해서 가격을 떨어뜨렸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대응능력이 뛰어난 데다 튼튼한 제조업 기반을 갖고 있는 덕분입니다.”
▷서비스산업 비중을 높여 산업구조를 선진화하자는 주장도 많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국은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높은 제조업 비중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해 가능한 한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발전에 유리하고 성장에 기여하는 바도 큽니다.”
▷제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나요.
“앞으론 1차 2차 3차 산업 모두 스마트화가 진전되면서 산업의 구분이 사라질 겁니다. 농업의 경우 스마트팜이 급수부터 온도까지 자동 조절해 농산물을 재배합니다. 산업의 경계가 무의미해집니다.”
▷현재 제조업과 미래 제조업은 다르다는 얘기군요.
“모든 산업이 지능화·스마트화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고도의 기술을 활용한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통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제조업이 발달하면 서비스업 발전도 따라옵니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각 산업의 스마트화를 위해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약합니다. 빅데이터나 AI를 이해하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대기업은 자체 역량을 그런대로 갖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국가가 많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올해 경영 환경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 영향을 줄 큰 변수는 미국과 중국의 정치 변화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고립주의를 버리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한 점은 긍정적입니다. 중국은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 국가주석이 어떻게 처신할지 지켜봐야 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변수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다시 득세할까 우려스럽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 포퓰리즘은 없습니다. 안그래도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걱정입니다.”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상당합니다.
“혁신을 가로막는 제도와 문화부터 바꿔야 합니다. 혁신이 있어야 발전을 하는데 정부부터 혁신에 대한 가치부여에 인색합니다. 공유차량 서비스인 ‘타다’ 서비스가 좌절된 게 단적인 사례입니다. 앞날을 걱정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한국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원천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업들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이 모두 혈안이 돼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할 수는 없으니 중지를 모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기업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고 전문가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의 국회 입법을 보면 기업을 점점 더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의 복귀를 위한 리쇼어링 정책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원칙을 지켜줘야 하는데 이를 경시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선 사람도, 기업도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최대 효과가 나옵니다. 사회주의적인 법안과 정책이 나오는 점도 우려됩니다.”
▷지난 연말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이 대거 통과됐습니다.
“기업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하는데, 경제계의 많은 원로들도 이들 법안이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인정해야 합니다. 국회가 나서서 기업인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기본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제조업이 사라지면 대한민국도 없어집니다. 경영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자 처벌, 법인 벌금부과,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처벌의 가혹한 법입니다.”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조급증을 버려야 합니다. 정부는 임기 내에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정권에 안되면 다음 정권에 가서도 한다는 각오로 대화를 계속해 국가적 공감대를 이뤄야 합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산업계 전반이 영향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탄소중립)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들도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철강업체들은 수소를 활용해 철강제품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포스코 회장 재직 시절 국책사업으로 하기 위해서 다섯 번이나 국회를 찾았습니다. 중요한 과제라 국가적 차원의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뭔가요.
“엄청난 전기가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철광석을 환원하기 위해 수소를 투입하면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흡열반응이 이뤄져 외부에서 전기로 열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줄이려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대안은 원자력 발전뿐인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해외 경쟁사들은 원자력 발전을 통해 저렴하게 생산한 전기를 이용할 텐데, 한국에 원자력 발전이 없어진다면 철강업의 원가경쟁력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탈원전과 탄소중립은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정책을 만들 때 기술과 현장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기업가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기업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이룬 이면에는 창업자들의 기업가 정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비전과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국가 최고 기술자 반열 오른 '鐵의 사나이'
△1950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사대부고 졸업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캐나다 윈저대 금속공학 석사, 미국 피츠버그대 금속공학 박사
△1986년 포스코 입사
△2014년 3월~2018년 7월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포스텍 이사장,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
정리=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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