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회사 문 닫기까지 정확히 1년남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팬데믹’으로 치닫던 지난해 4월.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화상회의로 100여 명의 직원을 불러 모아 이같이 말했다. 직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차세대 여행업 선두주자, 경쟁사들의 부러움과 견제를 한몸에 받던 ‘혁신의 아이콘’ 기업 직원들로선 상상하기 힘든 청천벽력이었다.
이 대표는 회사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유했다. 월간 거래액은 지난해 1월 520억원에서 4월 1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헤드헌터들은 ‘마이리얼트립 직원 빼돌리기 작전’을 펼쳤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상황을 공유한 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장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위기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극복하면 더 큰 기회가올 겁니다.”
‘벼랑 끝’에 선 마이리얼트립도 선택을 해야 했다. 당장 인원을 덜어내야 한다는 조언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이리얼트립은 그러나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단 한 명도 내치지 않았다. 무급휴직도 없었다. 오히려 채용을 늘리는 초강수를 뒀다. ‘위기에서 역량을 쌓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에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직원들 사이에 퍼져갔다.
이 대표는 “큰 그림을 보려 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행업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하나투어 등 인력을 감축하지 않은 기업들이 불황 직후 회복하는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키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준비되지 않은 국내 업체들과 달리 온라인을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부킹닷컴, 아고다 등 해외 여행업체들이 국내 시장의 지배자로 등장했다. 이 대표가 주목한 부분이다.
해외 랜선투어 상품도 내놨다. 현지 가이드들이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여행지를
소개하는 상품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는 밤낮 가리지 않고 사내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쏟아낸 시기였다”며 “어떻게든 같이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컸다”고 회상했다. 생계를 걱정했던 4000여 명의 해외 현지 가이드들의 ‘충성도’는 견고해졌다.
선순환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게 이 시점이다. 마이리얼트립은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상황은 점차 개선됐다. 국내여행 상품과 랜선투어 흥행에 힘입어 월간 거래액은 지난해 4월 10억원에서 12월 105억원으로 늘었다. 그사이 직원 수는 110명에서 130명이 됐다. AI 상품 추천 기술은 상당 부분 고도화됐고,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며 막연하기만 했던 해외여행 재개까지의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상품으로 창출한 거래액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차별화된 상품의 매력을 경험한 국내 고객 상당수가 코로나19 이후 해외 상품 고객으로 연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사업 파트너들과의 상생으로까지 한발 더 나아갔다. 랜선투어를 함께 기획한
‘파트너’인 가이드라이브에 지난해 11월 투자했다. 생계가 막힌 현지 가이드들에게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랜선투어는 유료 서비스를 고집했다. 보통 서비스 시작 단계엔 사용자 확보를 위해 무료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과 상반된 행보다. 이 대표는 “같이 살아야 더 큰 시너지가 나고, 더 큰 꿈을 좇을 수 있다”며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파트너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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