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21년, 그래도 희망 찾고 미래를 보자

입력 2020-12-31 16:39   수정 2021-01-01 00:17

2021 신축년이 밝았다. 기대와 소망의 새해를 말하기엔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도 엄혹하다. ‘우려와 호소’로 일관한 기업인들의 신년사 때문만이 아니다. ‘백신 위기’가 돼버린 ‘코로나 쇼크’ 때문만도 아니다. 흔들린 법치, 짓밟힌 기업가 정신, 손상된 국격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국민 모두가 다 아는 현실을 독선과 아집의 위정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럴수록 깨어나는 국민과 굴하지 않는 기업이 희망이다. 안팎의 시련과 위기에 흔들리지만 ‘대한민국호(號)’는 그래도 미래로 항진하는 불굴의 도전정신이 아직 남아 있다. 오뚝이 같은 청년들과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기업인, 세계로 나아가는 문화창작인, 그리고 말없이 굳건히 자기 몫을 다하는 수많은 이들이 올 한 해에도 희망을 살리고 미래비전을 보여줄 것이다. 엄동설한의 얼음장 밑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물은 흐른다.
정치가 훼손한 국격, 말없는 국민이 지탱한다
대립과 분열, 좌절과 분노, 냉소와 체념…. 한국의 3류 파당정치는 말로만 ‘통합과 화해’를 외칠 뿐 갈등을 키우고 분란을 조장해왔다. 정치가 ‘사회적 먹이사슬’의 맨꼭대기에서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 이런 후진적 구도에서 경제 위축은 필연적이다. 진영논리와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퇴행 정치와 분열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짙다. ‘거의 모든 것의 정치화’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은 변함이 없다.

더욱 노골화한 ‘신주류 기득권’ 세력의 위선과 억지가 넘쳤다. 거대여당은 총선 압승 이후 폭주를 거듭했고,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던 K방역은 백신 접종 지연, 구치소·요양병원 집단감염으로 허상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에 ‘기적의 번영’을 안겨준 자유·개방·시장 가치를 부정하는 밀실의 ‘입법 테러’도 잇따랐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우방이 한국의 반민주·반자유 행태를 공개비판하는 낯부끄러운 일까지 벌어졌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살벌한 정치 탓에 국정 난맥상에도 공직사회는 더욱 엎드렸다. 재정 부실화에 공범이 되고, 24전 24패의 부동산정책과 ‘탈(脫)원전 대못 박기’의 수족이 됐다. 법무부는 법치 훼손으로, 통일부는 허망한 대북 구애로, 고용노동부는 거대노조 눈치보기로 일관했다.

현실은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찾는 것은 정치가 무너뜨린 국격을 국민이 지탱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방역은 국민이 견뎌내고 의료진이 헌신하기에 버티고 있다. 더 힘들고 어려워진 이웃을 위해 산타클로스와 날개 없는 천사들이 어김없이 다녀갔다. 한국 사회는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
절체절명 위기 '기업의 힘'으로 버틴다
미증유의 ‘코로나 쇼크’는 지난해 우리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작년 한 해 국내총생산(GDP)은 1% 안팎 뒷걸음질 친 것으로 추정된다. 22년 만의 역성장이다.

그나마 위안은 독일(IMF 추정치 -6.0%) 일본(-5.3%) 등 주요 산업국가들에 비해선 선방한 점이다. 최악의 위기 속 기업들의 분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년 3∼4월 세계가 공포에 질려 속속 문을 잠갔을 때 가장 먼저 이를 뚫고 중국 베트남 유럽의 생산현장으로 달려간 것이 한국의 기업인들이다. 이들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반도체, 가전에 이어 배터리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고전했던 조선업계가 초격차로 수주를 싹쓸이하며 부활을 알린 것도 작지 않은 낭보였다. 빈약한 국가 외교역량에도 한국이 기어코 4년 연속 수출 5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가볍게 여겨선 안 될 쾌거다. 내수소비 위축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과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실적 개선과 고용 창출을 통해 경제에 숨을 불어넣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역시 기업이 희망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에 힘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발목 잡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 것”이라던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하게 기업들에 돌아온 건 기업규제 3법, 노동조합법 같은 ‘규제폭탄’이었다. 21대 국회가 개원 후 쏟아낸 규제법안만 1400여 건에 달한다. 이게 정상 국가인가. 기업을 ‘얼마든 때려도 되는 존재’쯤으로 여기고, 하향 평준화에 골몰하다가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을지 모른다”(허창수 전경련 회장)는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다.
세계 최강의 젊은세대, 대한민국 희망이다
새해 가장 중요한 경제이슈로 서울시민들이 꼽은 것은 ‘청년실업과 고용문제’였다. 1년 이상 취업 못 한 청년이 70만 명을 넘는다. 그러나 청년들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희망봉을 찾아나섰다. 새로운 감각, 틀을 깨는 도전의식, 주눅들지 않는 글로벌 감각이 그들의 무기다. K팝·K컬처 등 문화산업 분야가 주무대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1위가 연중 이슈였다면, 연말에는 국악까지 떠올랐다. 퓨전 국악 ‘범 내려온다’는 5억 뷰 넘는 대히트를 쳤다. “가사는 몰라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외국인들의 찬사가 이어지며 우리의 전통도 글로벌 히트상품이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영어 가사 ‘다이너마이트’에 이어 한국어 가사로 만든 BTS의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이 빌보드 싱글 1위에 오른 것도 의미가 크다. K컬처가 그동안의 국지성, 언어장벽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태세다. 청년의 잠재력을 기반으로 우리 경제의 ‘소프트 경쟁력’을 키운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상대로 스타트업 대전(大戰)을 벌이는 청년 기업들도 주목된다. “직원에게 자유를 주면 영웅이 나온다”(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청년기업인의 외침은, 유일한 규칙이 ‘노 룰(No Rule)’이라는 넷플릭스를 연상시킨다. “사회문제를 학문으로 풀면 연구자, 실생활에서 풀면 창업자”(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라는 식의 유연한 사고도 넘친다. 권위의식·관행·눈치보기를 배격하는 한국의 청년들은 ‘알아서 잘하는’ 새 인간형이다. 걱정은 이들에게까지 온갖 ‘족쇄’를 채우려는 규제본능과 높고도 단단한 기득권의 장벽이다.
어려울 때 더 빛난 '한국인 DNA' 되살리자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보편과 상식, 원칙의 힘을 믿게 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랐다. 독주하는 청와대와 거대여당에 대한 지지도 변화 또한 건전한 중간지대가 눈을 뜨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사법부의 제 역할이 법치주의의 재확립이었다면, 여권 독주를 견제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 스스로의 균형잡기 노력이라고 할 만하다. 초유의 위기 속에도 버틴 경제 펀더멘털과 함께 우리 사회가 지닌 강한 복원력이자 저력이다.

복원력과 회복의 DNA로 치면 우리에겐 ‘외환위기 극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1997년 말 국가적 경제위기 때 기업은 미증유의 구조조정을 돌파했고, 그 과정에서 각고의 고통도 노사 합의로 이겨냈다. 그때는 정부도 공공부문 군살을 빼며 사회적 구조개혁에 매진했다. 실직의 극한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장롱 속 돌반지까지 찾아내 금 모으기로 힘을 보탰다. 이런 위기극복 DNA라면 빨간불이 켜진 재정위기도, 바닥이 보이는 잠재성장력도, 무한경쟁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구시대적 겹겹 규제도 결국은 풀어내고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만들고 미래의 좌표를 다시 찍어나가자. 그게 2021년 올해 우리의 역사적 과제요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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