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등 각 분야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마케팅 전면에 나서고 있다. 광고 출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연설자 등으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다. 과거 대외 노출을 꺼리며 '은둔의 경영자'가 미덕으로 여겨지던 분위기에서 적극 소통하는 모습이 시장에 긍정 효과를 주는 시대로 바뀌었단 분석이다.
이 영상은 "갓 수확한 배추를 그대로 집에서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국 각지의 신선함을 전달하고 싶은 이마트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사계절 어느 산지에서나 식재료의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마트와 함께하시는 건 어떨까요"라는 정용진 부회장의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었다.
영상은 정용진 부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집밥 수요가 커지면서 소비자가 요리하는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설명. 정용진 부회장은 계획에 없던 배추말이 쌈을 즉석에서 만드는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현장에서 사용한 칼과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앞치마 역시 그가 직접 챙겨간 소품. 제작팀 20여명이 해남까지 동행해 촬영을 도왔다.
그는 앞서 스타벅스코리아 공식 채널에도 깜짝 등장했다. 방송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21주년을 맞은 스타벅스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며 가장 좋아하는 메뉴 3가지를 꼽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신세계푸드 올반 옛날통닭과 노브랜드 재래김, 스타필드 하남, 이마트 매장 방문 사진 등을 잇따라 올리며 깜짝 홍보효과를 내고 있다.
일례로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신세계조선호텔의 '삼선짬뽕'은 지난 8월 출시 한 달 만에 2만개 넘게 팔렸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함께 만든 '바닷장어 무조림'은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뒤 한 주 만에 1만9000팩이 완판됐다. 신세계푸드 자체 브랜드 피코크의 신제품 '진진칠리새우'도 지난 7월 그가 계정에 "먹을만함"이라고 리뷰를 올린 당일 네이버 검색량이 전날보다 11배 폭증했다. 50만을 넘긴 SNS 팔로워의 영향력을 입증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광고에 직접 출연하며 이목을 끌었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11월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리니지2M 스페셜 영상'에서 그는 노란색 머리의 중세시대 대장장이 모습으로 분해 코믹 연기까지 선보였다.
이 영상에는 리니지2M 개발을 주도한 이성구 총괄프로듀서, 백승욱 개발실장, 김남준 PD도 다른 대장장이 역할로 출연했다. 김택진 대표와 개발진은 리니지2M 1주년을 맞아 유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광고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김택진 대표는 자사의 게임 광고 시리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 게임 이용자들로부터 '택진이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특히 2017년 '리니지M' 100일 기념 광고 영상이 압권이다. 일식집에서 게임을 즐기던 손님이 아이템 강화에 실패하고 김택진 대표의 이름을 부르며 '개꿈'이라고 외치자 옆자리에서 이를 들은 김택진 대표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소화해 웃음을 줬다.
당시 자사 게임에 대한 셀프 디스와 함께 광고 영상 말미 일식집에서 나온 김택진 대표의 "쿠폰이 어딨더라"라는 대사도 회자됐다.
2018년 '리니지M' 론칭 1주년을 기념한 후속편에서는 김택진 대표의 이름에서 따온 'TJ의 쿠폰'을 받은 손님이 기쁜 마음으로 "택진이형"을 외치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연출됐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기업 CEO지만 경영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여전히 개발에도 직접 관여할 정도로 게임에 공을 들이고 있고, 권위적이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의 CEO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서정진 회장은 정치권 인사와의 만남이나 포럼 등에 회사 간부를 보내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서 '발로 뛰는 CEO'로 유명하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바이오 업계가 주목 받기 전부터 기자간담회도 직접 챙겼다. 바이오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평소 소신에 따른 행보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상황 점검차 셀트리온 2공장을 찾았을 때 서정진 회장이 근접 수행하며 치료제 개발 현황을 브리핑했다. 지난달 22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셀트리온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포럼도 직접 참석했다. 작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같은해 6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행사 '넥스트라이즈(NextRise) 2020' 기조연설에도 올랐다.
10월엔 바이오의약품 전문인력 양성센터 유치 기념 토론회에서 '4인 4색 바이오 토크콘서트'에 얼굴을 비췄고 지난달엔 글로벌바이오포럼에서 기조발표를, 2020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에서 강연을 각각 진행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를 대표하는 CEO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회사의 방향성과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며 "과거 기아자동차 K9을 출시했을 때 판매량이 부진하자 정몽구 당시 현대차그룹 회장이 의전 차량을 K9으로 바꿔 돌파구를 마련한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업적 광고는 뻔하다는 걸 소비자들이 알고 있지만 회사 최고 책임자가 직접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면 신뢰감을 주고 메시지 전달력이 훨씬 뚜렷해진다"며 "과거 1세대 오너들은 보수적인 면이 강해 직접 소통을 하지 않았다. 최근 CEO들은 SNS를 적극 활용하고 직접 얼굴을 비치면서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말실수를 하거나 자칫 의도치 않게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이 부분만 잘 관리한다면 CEO들의 직접 소통 행보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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