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처벌하니 학교도 넣자"…황당한 중대재해법 규제 논리

입력 2021-01-03 17:25   수정 2021-01-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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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개나 되는 (안전 관리자의) 의무를 모두 (기업의) 대표자가 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심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 대표 한 사람에게 산업보건안전법, 소방법, 시설물안전법 등에서 규정한 각종 안전 관리 의무를 지우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지적이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중대재해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법 제정은 ‘브레이크’ 없이 추진되고 있다. ‘근로자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에만 사로잡혀 국회 내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의당과 산업재해 유가족이 단식농성까지 벌이면서 거대 여당이 여론에 휩쓸리며 법안 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당 내에서도 중대재해 범위 놓고 논란
법사위는 지난달 26일부터 중대재해법을 상정해 심사를 하고 있다. 박주민·박범계 민주당 의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견 등이 종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하자가 많고, 위헌 소지도 적지 않아서다. 예컨대 여야는 ‘중대재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데 하루를 썼다. 당초 원안에는 △근로자가 한 명 이상 사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두 명 이상 나타나거나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했을 때 중대재해로 봤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소위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재해로 하면 범위가 너무 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며 난색을 나타냈다. 하지만 제정 취지가 훼손된다는 비판에 밀려 ‘사망자 1명 이상’은 그대로 유지됐다.
흠결 많은 법안 땜질식 심사
법사위는 이런 식으로 법 조문 하나하나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만큼 법안에 흠결이 많다는 얘기다. 당초 원안에 대해 정부는 “실질적으로 관리책임을 부담시키기 어려운 경우까지 정부기관장에게 무분별한 형사책임이 부과될 수 있다”며 장관·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장관·지자체장만 슬그머니 뺐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여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달 31일에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비공개회의에서 “중대재해법이 자영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달라”고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 주문했다. 음식점, 노래방,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해 자영업자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는 논란이 일면서다. 이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되는 자영업자의 범위 및 처벌 수위가 낮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는 “학원은 포함됐는데 학교는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학교장을 새롭게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사전에 학교장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한달 만에 법 제정, 세계 유례 없다”
민주당은 불과 지난해 11월 초만 해도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존중하나 이중처벌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정의당과 박주민 의원 등 여당 내 극진보 성향 의원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돌연 “중대재해법은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법안”이라며 입법을 주문했다. 이후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을 두고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최고위원인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대안으로 안전 관리 전문기술보유업체에 대해 국가 인증제를 도입하고, 인증업체에 안전 관리를 맡긴 기업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공개 제안했다. 하지만 이를 법안에 포함할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오는 8일까지 중대재해법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심사 한 달여 만에 만드는 경우는 적어도 선진국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조미현/좌동욱/이선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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