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애플은 미국 34개 주에 1억1300만달러(약 1250억원)를 내기로 했다. 일명 ‘배터리 게이트’에 대한 합의금이었다. 배터리 게이트는 아이폰6 등 구형 모델 이용자들이 “배터리 잔량이 떨어지면 아이폰의 속도가 느려지도록 운영체제가 변경됐다”고 불만을 제기해 시작된 사건이다. 국내에서도 2018년 애플을 상대로 한 배터리 게이트 소송이 제기됐다. 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총 6만4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을 대리해 국내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은 법무법인 한누리다. 수많은 ‘집단소송’을 대리하며 이름을 알린 곳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한누리의 김주영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는 ‘한누리가 집단소송에 강하다’는 평가에 대해 “특출난 성과를 냈다기보다는 다른 로펌들이 엄두를 못 내는 분야에 끈질기게 매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건 언제 어디서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2000년 문을 연 한누리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굵직한 집단소송을 이끌어왔다. 2008년 대우전자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소액주주들이 대우전자의 감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회계법인에서 100억원대 손해배상을 받아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소액주주들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판결로 얻어낸 배상액 중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해 화제가 됐다. 2017년엔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증권 집단소송에서 국내 최초로 승소를 이끌어냈다. ‘ELS(주가연계증권) 소송’으로 도이체방크와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등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다. 소송을 낸 이들은 6명이지만 피해자 460여 명이 다 함께 배상받았다.
한누리의 전체 구성원은 변호사 13명을 포함해 총 22명이다. 김 대표변호사의 부친이자 대법관 출신인 김상원 고문변호사를 비롯해 김 대표변호사의 형인 김주현 변호사(17기)가 설립 멤버다. 서정 대표변호사(26기), 송성현 변호사(36기), 박필서 변호사(38기) 등도 한누리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김 대표변호사는 “집단소송을 다루다 보니 다른 로펌들에 비해 송무 업무를 지원하는 일반 직원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근속연수가 길고 숙련도 높은 직원들이 한누리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설명했다.
인재 영입에도 신경쓰고 있다. 최근 집단소송뿐 아니라 공정거래 분야 경력직 변호사들을 뽑았다. 김 대표변호사는 “신규 변호사를 뽑을 때는 기본기는 물론 창의력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자질”이라며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든 독특한 소송을 많이 하는 만큼 자기 발전에 욕심 있는 이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했다.
한편 김 대표변호사는 집단소송제 확대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기업에 대한 과잉처벌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임무 해태 및 배임과 관련해선 형사가 아니라 민사 소송으로 가는 게 맞다”며 “판례가 추상적이고 모호한 배임죄 등은 민사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