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자는 이낙연 대표의 제안에 대해 “당사자의 사과와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3일 밝혔다. 이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위해 당내 설득에 나섰지만,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강경한 반발에 한 걸음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면 논의 결과가 이 대표의 대권 가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불과 이틀 전 당 대표가 고심 끝에 제안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두고 “당사자들의 반성이 우선”이라는 당의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이다. 일각에선 “이런 분위기에선 사면 논의가 더 진행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의견이 흘러나왔다.
이 대표는 최고위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위기 등 국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위해 국민의 통합된 힘이 필요했다”며 사면 건의 관련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 진영정치를 뛰어넘어서 국민 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박 전 대통령의 판결 결과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보겠다”고 덧붙였다.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이후 사면 논의를 추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본인 잘못을 사과할 수 있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면권한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에 대해 이 대표는 “그런 일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잘한 판단”이라며 사면론에 힘을 실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도 SNS에 “민주당과 대표는 대통령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했다.
대권을 두고 당내에서 경쟁하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 대표의 사면론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두 대통령의 사면론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날은 의견 표명을 자제했다. ‘추미애-윤석열’ 충돌 사태처럼 민감한 현안에 거리를 두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위 회의에서 사면에 앞서 당사자 사과와 국민 및 당원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고 못 박으면서 민주당 내 사면 논의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 최고위의 결정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재판받는 사람에게 반성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라며 “사면을 두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형 확정이 남은 데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절차가 필요한 사안이라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며 “당 대표가 의제를 던진 만큼 우선은 당의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가 사면과 관련해 사전에 문 대통령과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훈/강영연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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