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은 당장 한두 달 뒤 주총이 예정된 만큼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 등의 대비를 위해 시행 시기를 1년 이상 유예할 것을 요구했다. 공정거래법은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서 특수관계인 간접지분 기업은 제외해 줄 것 등을, 노동조합법의 경우 사용자에 대한 직접적 형사처벌은 폐지하고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대항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거에는 연초가 되면 경제단체들이 신년인사회를 열고 초청한 정치인들과 덕담을 나누는 게 관행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해마다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기업인들을 격려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는 덕담과 격려는 고사하고 새해 벽두부터 경제계가 국회를 향해 “제발 보완 입법을 해 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회와의 관계에서 ‘영원한 을(乙)’일 수밖에 없는 경제단체들이 보완 입법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고 다급하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들 3법이 한꺼번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당장 올해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규제 대응이 워낙 시급해 본업이 뒤로 밀린 판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집단소송법 등이 줄줄이 입법 대기 중이다. 이들 법안은 형벌(징역형)과 천문학적 손해배상에 대한 우려로 기업인과 기업활동을 꽁꽁 묶어버릴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벼랑 끝 자영업자들은 극한 상황에 내몰릴 판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했던 한국 기업들은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기업을 절망케 하는 건 코로나19 같은 외부 변수보다 규제폭탄과 반(反)기업 정서다. 코로나 와중에도 한국 기업들은 비교적 선방해왔다. 증권사 세 곳 이상에서 실적 전망치를 내놓은 296개 기업 중 118개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우리 경제가 비교적 선방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기업 덕분이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의 인내력마저 바닥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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